게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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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어: Gaeilge /'geːlʲɟə/
스코틀랜드 게일어: Gàidhlig /'kaːlikʲ/
맨어: Gaelg /ɣɪlk/

1. 개요2. 분류3. 하위 언어4. 기타

1. 개요[편집]

아일랜드를 비롯해서 스코틀랜드맨 섬에 남아 있는 인도유럽어족 켈트어파의 언어들.

고이델어(Goidelic)라고도 한다. '고이델어'는 주로 학문적 영역에서 특수하게 사용되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보통 '게일어'(Gaelic)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2. 분류[편집]

특정한 한 언어가 아니라 켈트어의 한 분파로 조상 언어를 같이하는 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맨어(Manx 맹크스, 맨 섬의 고유어)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중세 아일랜드어에서[1] 갈라져 나온 매우 가까운 언어이다. 본래 스코틀랜드에는 아일랜드어와 가까운 방언들이 많이 존재했지만, 18-19세기 들어 대부분 사멸하면서 차이가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덤프리스나 갈로웨이같은 지역에서 이같은 저지대(로울랜드) 게일어 방언이 쓰였으나 현재는 저지대 방언이 소멸해 고지대(하일랜드)에서만 게일어를 쓴다. 방언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는 말도 있으나 인터넷 상에서의 각 언어 화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각 개별 게일어 화자들 사이에서 서로 쉽게 이해되지는 않을 정도로 그 차이는 꽤 큰 것으로 보인다. 즉 완전히 다른 언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가깝지만 같은 언어로 보기엔 너무 멀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어가 넘어오게 된 것은 고대 아일랜드인의 일파가 6~7세기에 스코틀랜드 서부로 건너갔기 때문이다.[2] 이 시기 현재의 북아일랜드 일부와 스코틀랜드 서부에는 이들이 세운 달 리아타(Dál Riata)라는 나라가 있었던 적도 있다.[3] 9세기에 스코틀랜드 왕국이 성립된 뒤에는 한 동안 궁중 언어였다가, 이후 영어에서 파생된 스코트어[4]가 궁중 언어로 바뀐다.[5]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시대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스코틀랜드가 통일 왕국을 이룩한 이후 상당 기간 이 언어가 남동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가 되었었기 때문에 15세기 전까지는 이 언어가 '스코틀랜드어'로 불렸고, 남동부의 스코트어는 그냥 영어라고 지칭되었다. 하지만 15세기 이후 '영어'라고 지칭되던 스코트어가 스코틀랜드의 궁중 언어로 바뀌게 되면서 이 언어를 잉글랜드에서 쓰이는 영어 방언들과 구분해 스코틀랜드어(스코트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그냥 '아일랜드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세기 이후로 스코틀랜드의 '아일랜드어'와 아일랜드의 아일랜드어가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 언어를 스코틀랜드 게일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아일랜드어는 14만 명이 모국어이고 제2언어인 사람은 1백만 명이 넘는다. 스코틀랜드 게일어의 경우 5만 7천 명 정도가 모국어 화자고 8만 7천 명 정도는 약간의 구사 능력이 있다고 집계되었다. 게일어가 쓰이는 지역 대부분은 이미 영어가 일상 언어로 대체된 지 오래고, 영어 대신 게일어가 일상어로 쓰이는 곳은 극히 일부 지역으로 축소된 상황이라 안습...

3. 하위 언어[편집]


이 세 언어는 모두 중세 아일랜드어에서 파생되었다.

4. 기타[편집]


[1] 아일랜드어와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17-18세기까지도 쓰이는 형태로는 거의 다를 바가 없었으며, 맞춤법 개정으로 인해 분화되기도 했다. 여기를 참조.[2] 본래 스코틀랜드(정확히는 라틴어 Scotia)는 아일랜드의 다른 이름이었는데,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이들 때문에 현재의 스코틀랜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3] 현재의 스코틀랜드 땅에는 쓰였던 언어가 매우 많았다. 게일어와 또 다른 켈트어로 추정되는 픽트어(본래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가 점점 게일어에 밀려서 소멸), 스코틀랜드 서남부와 잉글랜드 동북부에서 쓰였던 컴브리아어(역시 켈트어의 일파인 브리튼어에서 파생된 언어인데 웨일스어와 가까웠다. 현재 소멸), 그리고 동남부에서 쓰였던 영어(이후 스코트어로 발전) 등이 있었다. 또 9세기경부터 스칸디나비아에서 노르딕인(바이킹)들이 브리튼섬을 침략해 들어와서 그들의 언어도 유입됐는데, 스코틀랜드 본토 북동부의 케이스니스와 그 이북에 있는 오크니, 셰틀랜드 제도(이 두 제도는 15세기까지도 스코틀랜드 영토가 아니고 노르웨이 영토로 남아 있었다)에서는 오랫동안 그 언어가 남아 노른어(Norn language)로 발전했다(현재 소멸). 언어만 봐도 스코틀랜드는 원래 완전히 이질적인 민족 구성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라 훗날 스코틀랜드인이라는 하나의 '민족' 정체성이 생긴 게 신기할 지경이다.[4] 스코틀랜드 남동부 지역은 본래 앵글로색슨 7왕국(heptarchy, 헵타키) 중 하나였던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의 영토였다. 이 지역이 스코틀랜드로 흡수된 뒤에도 영어의 북부 방언이 쓰였다. 이것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스코트어가 되었다.[5] 이런 지배 언어의 교체는 11세기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11세기 말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점령하면서, 기존의 잉글랜드를 지배했었던 웨식스(Wessex) 왕가의 공주인 마거릿 공주가 스코틀랜드로 망명했다. 스코틀랜드왕 맬컴 3세는 마거릿과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던컨 2세가 태어났다. 이후 맬컴 3세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자 게일 귀족들은 맬컴의 동생인 도널드 3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던컨 2세가 앵글로색슨족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왕위에 오르면 사회 체제가 바뀔 우려가 있었기 때문. 던컨 2세는 잉글랜드로 도망쳤는데,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노르만 왕가는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던컨 2세는 도널드 3세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 그래서 도널드 3세를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의 '순수' 게일족 국왕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스코틀랜드 궁중 언어가 영어의 변종인 스코트어로 서서히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