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풍군

최근 수정 시각:

분류

開豊郡 / Kaephung County

개풍군
開豊郡 / Kaephung County

국가

북한

면적

262.601㎢

광역시도

황해북도

행정구역

1읍 27리

시간대

UTC+9


파일:림한리.jpg
림한리 선전마을.

1. 개관2. 기후와 풍토3. 산업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4.1. 구 개성군 지역4.2. 구 풍덕군 지역4.3. 구 개성군 + 풍덕군 지역

1. 개관[편집]

북한 황해북도에 있는 군(郡).

원래 개성군이었으나, 1930년 개성군 송도면(松都面)이 개성부로 승격됨에 따라 부외(府外)지역을 개풍군으로 개칭한 것이다. '개풍'이란 명칭은 기존 명칭인 '개성'과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개성군에 병합된 옛 고을 '풍덕'에서 앞 글자를 딴 것이다. 광복 당시에는 14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군청은 개성시 용산동에 두고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영남면·영북면·북면을 제외하고는 38선 이남이어서 남한지역이었으나, 1953년 휴전협정으로 전 지역이 북한 영토가 되었다. 북한은 토성면 토성리를 개풍읍으로 바꾸어 군소재지로 삼았다. 개성직할시가 설치되자 개성직할시에 속했다가, 2003년 개성직할시가 폐지되자 황해북도로 편입되었다.

철도역으로는 경의선 개풍역(개풍읍), 려현역(려현리)이 있다.

개성특급시의 교외지역이기 때문에 고려왕조 시대의 왕릉과 유적이 많다.

비록 이북 5도청에서 보기에는 개성시와 개풍군이 따로 있지만, 만약 남북통일이 된다면 남한의 여타 시와 같이 개성시와 도농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개성시의 한정된 개발부지를 고려했을 때 개성시에 편입되어 남한의 파주시와 연담도시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직선거리 기준으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의 행정구역이다. 대한민국 김포시의 애기봉전망대나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북한 땅이 이 곳. 서울시계까지의 최단 직선거리도 약 24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해풍 김씨의 해풍이 여기의 옛 지명이다.

2. 기후와 풍토[편집]

아무래도 서울특별시보다는 춥다. 남부 평야지대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나, 영남면, 영북면 등 북부 산지는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이다.

3. 산업[편집]

개풍군은 개성인삼의 본산지이다. 아울러 복숭아 재배도 흔하다.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편집]

4.1. 구 개성군 지역[편집]

  • 남면(南面)
    면소재지는 신리이다. 1914년 개성군 상남면과 하남면이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남서쪽으로 한강에 접하며, 서쪽으로 예성강을 건너 연백군을 바라본다.
    소속 리 : 신(新)·군은(軍隱)·창릉(昌陵)[1]·후석(候石)·율응(栗鷹)·조제(照濟)·옥산(玉山)·장산(狀山)·수우(修隅)

  • 북면(北面)
    면소재지는 여현리이다. 1914년 개성군 강남면과 북서면이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광복 후 면 남부지역이 남한지역이었으나, 6.25 전쟁 후 북한지역이 되었다. 서쪽에 예성강이 흐른다. 여현리의 려현역은 38선 바로 북쪽에 있어서 한때 남북 간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여현리에 종유동굴이 있다.
    소속 리 : 여현(礪峴)·일삼소(一三所)·이소(二所)·용현(龍峴)·가토미(加土尾)·식포(食浦)

  • 상도면(上道面)
    면소재지는 풍천리이다. 1914년 개성군 군북면이 상도면으로 개칭되었다. 구릉이 기복되는 지대로, 왕릉은 아니지만 풍천리에 조선 태조의 첫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의 능인 제릉(齊陵)이 있다.
    소속 리 : 풍천(楓川)·삼인(三仁)·상도(上道)·양사(羊司)·연동(蓮洞)·대릉(大陵)

  • 서면(西面)
    면소재지는 광정리이다. 서쪽으로 예성강이 흐른다. 개성리 산162 소재 백송은 천연기념물 81호이나, 미수복지역에 있음을 사유로 해제되었다. 강리에 개풍향교가 있었다.
    소속 리 : 광정(光井)·연산(蓮山)·강(江)·개성(開城)[2]·전포(錢浦)?

  • 영남면(嶺南面)
    면소재지는 용흥리이다. 1914년 개성군 영남면이 동부면을 흡수하여 형성되었다. 개성 시가지 북쪽에 있다. 용흥리에 복원된 영통사가 있다.
    소속 리 : 용흥(龍興)·소릉(昭陵)·반정(伴程)·심천(深川)·현화(玄化)·대원(大院)

  • 영북면(嶺北面)
    면소재지는 길수리이다. 길상리 천마산에 대흥산성이 있으며, 부근에 박연폭포가 있다.
    소속 리 : 길수(吉水)·길상(吉祥)·고덕(古德)·월고(月古)

  • 청교면(靑郊面)
    면소재지는 양릉리이다. 개성의 바로 남쪽 교외이므로 왕릉과 유적이 많다. 소설가 故 박완서의 출신지.
    소속 리 : 양릉(陽陵)[3]·탄동(炭洞)·배야(排也)·유릉(裕陵)[4]·광답(廣畓)·묵송(墨松)

  • 토성면(土城面)
    면소재지는 토성리이다. 1914년 개성군 서부면과 중서면이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토성리는 토성역의 소재지로, 북한 치하에서 개풍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성의 서쪽 교외이므로 왕릉과 유적지가 산재하는데, 여릉리에 고려 태조 왕건의 릉인 현릉(顯陵), 공민왕의 현릉(玄陵), 노국공주의 정릉(正陵)이 소재한다.
    소속 리 : 토성(土城)·여릉(麗陵)·곡령(鵠嶺)·연하(煙霞)

4.2. 구 풍덕군 지역[편집]

풍덕은 원래 '해풍(海豊)'과 '덕수(德水)'의 두 고을이었다가, 조선 세종 때 통폐합되면서 해풍의 '풍'과 덕수의 '덕'을 따 명명됐다.

  • 광덕면(光德面)
    면소재지는 고척리이다. 1914년 풍덕군 서면과 군중면의 일부가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남서쪽으로 한강을 건너 강화도를 바라본다. 과거 경천사가 중련리에 소재해 있었고 경천사 10층 석탑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소속 리 : 고척(高尺)·중련(中連)·광덕(光德)·황강(黃江)·사분(寺盆)

  • 대성면(大聖面)
    면소재지는 풍덕리이다. 1914년 풍덕군 군내면과 군중면의 일부가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구 해풍현 및 풍덕군의 중심지로, 남서쪽으로 한강을 건너 강화도와 마주한다.
    소속 리 : 풍덕(豊德)·대성(大聖)·삼달(三達)·고도(古都)·삼귀(三歸)·지내(池內)·구읍(舊邑)·신죽(新竹)

  • 임한면(臨漢面)
    면소재지는 월암리이다. 1914년 풍덕군 서면이 임한면으로 개칭되었다. 임진강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면 이름 역시 두 강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남쪽은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를 바라보고, 동쪽은 임진강을 건너 파주를 바라본다. 대체로 평야지대이고 인삼과 배추가 많이 나서 6.25전쟁 이전에는 배추를 서울로도 많이 반출했다 한다.
    정곶리(림한리)북한에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서울시청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38km[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강 건너 보이는 가장 가까운 북한 땅이 바로 이곳. 월암리에 민제의 묘가 있다.
    소속 리 : 월암(月巖)·사동(仕洞)·채련(採蓮)·가정(佳井)·정곶(丁串)·유천(柳川)·상조강(上祖江)·하조강(下祖江)

  • 중면(中面)
    면소재지는 대룡리이다. 옛 덕수현의 소재지.
    소속 리 : 대룡(大龍)·식현(食峴)·덕수(德水)·송산(松山)·천덕(天德)·창내(倉內)·동강(東江)

  • 흥교면(興敎面)
    면소재지는 영정리이다. 1914년 풍덕군 군남면과 동면이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남서쪽으로 한강을 건너 강화도를 바라본다. 흥교리에 조선 정종의 능인 후릉(厚陵)[6]이 있다.
    소속 리 : 흥천(興天)·흥교(興敎)·궁천(宮川)·사곡(仕谷)·지현(芝峴)·조문(照門)·영정(領井)

4.3. 구 개성군 + 풍덕군 지역[편집]

  • 봉동면(鳳東面)
    면소재지는 봉동리이다. 1930년 개성군 동면과 개성군 진봉면이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서울특별시·장단 방면에서 개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런 입지조건 때문에 현재 개성공단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봉동리에 경의선 봉동역이 있으며, 흥왕리에 흥왕사터가 있다. 해발 200m인 덕물산(德物山)에는 최영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7].
    소속 리 : 봉동(鳳東)·대조족(大鳥足)·백전(白田)·발송(鉢松)·고두산(高頭山)·흥왕(興旺)·지금(芝金)·도평(都平)


[1] 고려의 추존왕인 세조 왕륭의 왕릉인 창릉에서 이름을 따왔다.[2] 개성특급시/역사 문서 참조. 삼국시대의 개성이 바로 이 곳이며, 고려의 도읍 이래 현 개성시내는 원래 '송악'이라 불리는 별개의 고을이었다.[3] 고려 20대 국왕 신종의 왕릉인 양릉에서 따왔다.[4] 고려 16대 국왕 예종의 왕릉인 유릉에서 따왔다.[5] 서울시청에서 동두천시청, 가평군 대성리역, 용인시 에버랜드,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영종도 등과의 직선거리와 비슷하다.[6] 휴전선 이북에 있는 (태조 이전 세대의 추존왕들의 왕릉을 제외하면) 유일한 조선왕릉이다.[7] 덕물산은 중부지역 무당들의 제일가는 성지였다. "택리지" 등에 의하면 사당 곁에 침실을 꾸며서 민간의 처녀를 뽑아 신령의 '아내'가 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나, 조선 말기에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