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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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상세
2.1. 데스노트의 예2.2. 도라에몽의 예2.3. 그 외의 예2.4. 여담
3. 개연성이 깨지는 비교적 흔한 예시들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통적인 논리학에서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정도를 수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여, 이를 '개연성'이라고 정의하였다. 현대적으로 생각하면,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확률(確率), 또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확실성(確實性)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문맥에 따라 '확률' 또는 '확실성'으로 해석해도 된다.

2. 상세[편집]

흔히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비웃음거리가 되는 두고 "개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한다. 좀 더 가볍게 말하자면 독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설정이 갑자기 등장하여 이야기의 중요 요소를 차지하는가 아닌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개연성이라는 단어를 작품을 평론할 때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작품에서의 개연성은 일반적인 성질의 개연성과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일반적인 사건을 주체로 개연성을 이야기 할 경우 현실성만 고려해도 충분하다. 역사적 사실이나 뉴스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품에서의 개연성은 독자의 시선이 주체가 된다. 작가가 어떻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든간에, 독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독자의 눈에 비추어지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숨겨진 설정을 미리 준비해 놨다 하더라도 독자가 이야기를 보던 도중 이 실마리 자체를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평론된다.

따라서 혼동하는 경우가 잦으나 기본적으로 개연성현실성과 별개의 문제이기 떄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세계관이 전제하는 설정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납득이 되는 묘사라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개연성은 독자와의 약속이며, 암묵적으로 독자들에게 "다음 장면에 이러이러한 장면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라며 미리 약속하는 것과도 같다. 장르가 액션물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을 보여줘야 하고, 러브스토리라면 끝까지 러브스토리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물론 코믹액션러브스토리 같은 복합 장르라면 그러한 장르를 충실히 그려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기분을 구매하러 작품을 관람하기 때문에 개연성은 약속 안에서 독자에게 제공해 주기로 한 감정을 최대한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만약 중간의 내용이 부실해 독자들이 감정이입하지 못했다거나, 결말이 사람들이 기대한 방향성이 아니어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이입하지 못했다면 다음날 평론은 분명 개연성부터 언급하게 될 것이다. 개연성은 작품에 있어서 핵심 주제이며,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개연성은 단순히 작품 내에서의 논리를 따지지 않는다. 작품이 어떻게 보여지는 가를 따진다. 앞뒤 이야기가 맞고 나름대로 흥미로울법한 구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재미없는 작품이 존재한다거나, 비현실적인 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 존재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따진 경우고, 후자는 독자들의 시선에서의 논리를 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작가가 창작을 할 때 개연성을 너무 공들여 신경 쓸 필요 없이 독자의 눈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논리를 맞추면 되겠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까지 개연성의 법칙을 간과한다면 깊이를 내기 힘들어 독자들에게 혼란이 오고 이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만들어 둔 큰 줄기상의 개연성이 무엇인지 신경 쓸 필요는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다소 맞지 않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스토리텔링 기법에 전제하여 논리의 중요성을 감추면 작품의 질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흔히 클리셰라 부르는 것들은 이러한 기법이 수도없이 노출된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다만 너무 남발하면 진부함만큼은 감추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각종 창작물에서는 비현실적인일들이 많이 나오지만, 작가의 설명. 독자들 이입을 방해하지 않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수긍을 한다.

다음은 개연성에 대한 몇 가지 예시들이다.

2.1. 데스노트의 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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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의 핵심 요소인 데스노트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존재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를 수긍한다. 만일 라이토가 L을 총으로 쏴죽이거나 때려 죽인다면 그 방법 자체는 현실적이겠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기에 이를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을 죽이는 노트로부터 이야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그 전제를 받아들인 독자는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이 비현실적인 전제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라이토는 작중에서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기에 비 이성적이고 과격한 방식을 동원하는데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게되고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데스노트에서 데스 만년필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연성을 해친다고 가정하자. 작품 특성상 이런 물건이 충분히 있을 법 하다. 그러나 만약 이 물건의 존재로 개연성이 깨지게 된다면 데스 만년필에 대한 설명이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 이 물건이 부정될법한 설정이나 묘사의 존재감이 클 수록, 데스노트와 관련지을 수 있는 카테고리가 멀면 멀수록 개연성도 크게 깨지게 된다. 물론 설정의 존재감이 작다면 옥에 티 정도로 개연성은 그렇게 크게 깨지지 않는다. 설정이나 묘사가 이야기와 상관 없다면 더더욱.

상황으로 이해해보자. 가령, 류크가 1권에서 라이토 옆에서서 라이토의 정의 집행을 구경하던 도중 갑자기 아무 종이에다 이름을 써서 사람을 죽이고 데스 만년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도중도중 데스 만년필의 존재가 드문드문 언급이 된 다음 마지막 최후의 장면에서 라이토가 죽기 직전 류크로부터 훔쳐낸 데스 만년필로 땅바닥에 경찰들의 이름을 적어 죽여버린다면 개연성이 깨지는 일이 아니다. "아, 데스 만년필을 갖고 있었구나!"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 할 테니까. 독자에 따라 반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묘사 하나도 없이 최후의 장면에서 데스 만년필을 꺼내 경찰들을 일벌백계하고 갑자기 라이토가 데스 만년필에 대해 설명한다면? 독자들은 그 설정을 받아들일수도 없을 뿐더러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생각하게 될 것이다.

2.2. 도라에몽의 예[편집]

온갖 판타지한 일은 다 일어나는 도라에몽에서도 어디로든지 문이나 대나무 헬리콥터처럼 뚱딴지 같고 참 말도 안 되는 물건 같더라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도구가 나오고 진구와 친구들 얘기가 나오는 조건만 충족하면 개연성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창 신나게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부터 생각해보자. 진구가 사고를 치고, 울며불며 도라에몽에게 달려간다. 도라에몽은 어떤 도구를 꺼내고, 진구는 그 도구로 장난을 친다. 이후 진구가 자신이 친 이 장난으로 인해 골탕을 먹고 돌아온다면 그건 충분히 도라에몽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도구를 사용하던 도중 미래의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경찰에게 잡혀가고, 판사가 진구 앞에서 도라에몽이 들고다니는 미래 도구가 법률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치 하나 없이 주구장창 설명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개연성이 깨진다.

만약 어른들을 위한 도라에몽이 새롭게 그려지고, 해당 물건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스릴러 느와르 물을 그린다면 스핀오프 개념으로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위의 예시는 처음 시작은 발랄하게 시작했고, 추후 일어날 내용도 발랄할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해버렸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는 그 누구도 뒷 내용이 어둡고 사무적일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는 초보들이 설정놀음을 해선 안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독자들의 시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섣불리 "독자들이 이부분을 이해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빠져 가볍게 넘어가도 될 법한 설정에 이야기를 달고 늘어트려버리면 안된다. 사람들은 이야기 그 자체가 말하는 모험에 관심이 있지 작가들의 치밀한 설정놀음엔 별 관심이 없다.

2.3. 그 외의 예[편집]

또 다른 좋은 예시 중 하나가 대털적외선 굴절기이다. 대털은 철저히 수긍 가능한 기술적 한도 내에서의 발상과 털이법을 전제로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으나 갑작스레 SF적 장비인 적외선 굴절기인 등장으로 인해 독자들이 매우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때문에 작중의 논리, 개연성이 흐려지며 몰입도가 저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처음부터 적외선 굴절과 같은 비현실적 설정을 전제로서 깔고 중요시 다루었다면 논란은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김성모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개연성 깨지는 설정들이 별다른 전제설명 없이 도중도중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사실, 상당히 흔한 사례다. 한국에서 작품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큐 사인 들어가는 경우가 좀처럼 없고, 일단 저질러보고 나니까 인기가 있어서 연재가 시작되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작가가 이전 설정을 잊어먹거나, 혹은 사건을 좀처럼 해결할 수 없어서 무리하게 전개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또한 작가가 미리 설명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면 개연성 없다고 받아들여지는 일도 종종 있다. 가령 1권에서 나온 설정이 한번의 언급 없이 현실시간 10년후 쯤 4~50권 쯤에 다시 등장하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치자. 만약 이 작품의 팬덤이 충분하고, 팬들이 1권에 나온 그 설정을 계속 언급했다면 별 상관이 없지만 그리 운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설정을 독자들이 잊어먹고 개연성 없이 받아들이기 좋다. 나중에 가서 1권을 다시 보면 "아, 여기서 나오기는 했구나"이럴 순 있겠지만 말이다.

2.4. 여담[편집]

독자는 작품을 보면서 추론을 하고 공감을 한다. 독자들은 작품을 볼 때 이야,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이런걸 이렇게 해볼 텐데. 어? 내 생각이 그대로 나오네. 공감되네 혹은 이야,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이 되지? 놀랍고, 갑작스럽긴 해도 설명이 딱딱 들어맞잖아? 난 왜 이런 추론을 하지 못한 거지? 재밌다!!라는 생각을 곧 잘 한다. 그러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잘 긁어주면 개연성이 높은 작품, 그러한 마음을 작품이 방해하면 개연성이 망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물론 방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 개연성이 있어도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보는 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편집과 구성이 엉망이라면 개연성이 있어도 망한 작품이 되기 좋지만 말이다.

'내러티브(narrative)'[1]의 주된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개연성은 반드시 갖추어야할 주된 요소 중에 하나인데, 이런 개연성을 효과적으로 확립시키기 위해선 복선이 중요하다.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결국 일을 내버렸다."라는 전개를 예로 들자면,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라는 행동들이 훗날 일을 내는 복선으로 작용되어 결국 일을 내고야 마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 전개의 개연성은 확립이 되는 것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를 비롯, 스토리(서사)를 다루는 그 어떤 창작물에서도 개연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2] 또 보다 높게 평가 받는다. 개연성은 곧 논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 논리적인 부분의 차이가 차원이 다른 몰입감과 감정이입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지전능한 캐릭터나 설정을 함부로 등장시키면 안 되는 이유인데 전지전능이 워낙 초월적인 개념이라 이야기에서 단순히 언급만 됐던 존재가 사실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고 있었다거나 모든 등장인물이 전지전능의 놀이감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져서 개연성에 엄청난 혼란을 주기 때문.

물론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장르도 존재한다. 바로 코미디. 개연성을 잘 파괴하면 그 부조리함이 사람들에게 희극으로 다가오기 때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개그는 개연성을 파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개연성을 미리부터 파괴한다는 약속이나 다름이 없어서 역설적으로 개연성을 성사시키는 셈이며, 따라서 장르가 코메디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객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매우 쉽게 받아들인다. 재미만 있다면 말이다.

반대로 너무 개연성이 딱딱 맞아 들어가면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사실 어느 사건이나 전개에서 온전히 논리적으로만 얘기가 진행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으며, 상기한 대로 개연성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개연성의 척도가 작품의 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개연성을 챙기지 않고 극적인 묘사에만 치중하다 보면 욕을 먹게 되는건 마찬가지지만.

일부 아마추어 평론가와 언론의 오용 탓인지 관련성, 연관성의 동의어로 오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은 가능성(possibility)을 말한다.

3. 개연성이 깨지는 비교적 흔한 예시들[편집]

  • 정의감으로 마왕에 맞서던 주인공이 마왕에게 죽을 위기를 맞았는데 갑자기 내리친 번개에 마왕이 맞아 죽고, 주인공은 살아나며 갑툭튀한 번개에 여정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 고전적인 예시로, 주로 반공만화라든지 프로파간다 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이런 경우 번개의 포지션은 특정 정치인이나 종교인이 되어 작품 내 정의를 상징하게 된다. 한국에선 김청기의 똘이장군이 대표적인 케이스

  • 이야기 내내 사람들을 괴롭혀 오던 빌런과, 그 빌런 세력에 심판을 내리던 주인공이 도시의 운명을 걸고 최후의 한판승부를 벌이는데 갑자기 등장한 히로인이 이 싸움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외치면서 빌런과 히어로가 화해하며 작품 내내 말해오던 의미와는 전혀다른 의미가 스토리에 부여되고 끝이 난다. - 라스트 제다이 이야기 스스로 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말과 전혀 다른 의미와 상황을 부여하며 스토리가 갑자기 끝나는 상황. 초중반과 다르게 후반부에 과하게 의미 부여하려다 이도저도 아닌 결말이 나는 상황이다. 어른의 사정으로 검열 때문에 후반부 상황이 짤려서 이렇게 되어 당대에 평가받지 못한 명작들도 꽤 된다. 물론 아예 대놓고 이런 작품이 없는 건 아니다.

  • 이야기 중반까지 계속 코믹스러운 일만 벌어지다 인물이나 사건의 성질 및 성격이 갑자기 바뀌고 점차 현실적인 시련이 닥치면서 엔딩 종장에선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 주로 희극성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영화에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려다 만들어지는 상황으로, 중반까지는 말도 안되는 재밌는 상황만 나오다 나중에 갑자기 극 전체의 의미가 전환되는 상황이다. 선생 김봉두인생은 아름다워에서처럼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이야기 할지가 분명하고, 캐릭터성과 배경도 일관되게 연출되면 독자들이 작품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면서 비극을 받아들이며 명작이 될 수 있지만, 영웅 강철남처럼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만 계속되다 뜬금없이 캐릭터성이 바뀌며 비극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안좋은 작품들은 이 뜬금없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현실적인 상황에선 감독이 교체되었다든가 제작진이 교체되었다든가, 배급사의 요청 등을 이유로 이런 경우가 많다.

  •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주인공. 알고보니 이복 남매였고, 그를 극복하여 사랑을 택하려 하나 더 자세히 알고보니 서로 배 다른 부모의 원수였다. - 매 편 부여되는 의미가 달라지는 막장 드라마가 만드는 상황. 이야기의 중점적인 부분이 계속 바뀌어 매 편 궁금하고 자극적이기는 하나, 개연성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개연성은 주제와도 큰 연관성이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1] '서술' 혹은 '서사'로 번역한다.[2]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법학이나 의학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개연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개연성'은 그 자체로 '논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