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프로젝트.png
이 문서는 나무위키 기독교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문서입니다.
해당 프로젝트 문서를 방문하여 도움이 필요한 문서에 기여하여 주세요!

기독교의 종파

칼케돈파

비 칼케돈파

기타 종파

개혁교회

보편교회

개신교 (Ecclesia Reformata)

가톨릭 (Ecclesia Catholica)

정교회 (Ορθόδοξη Εκκλησία)

오리엔트 정교회

서방교회

동방교회


1. 개요2. 상세3. 특징4. 한국의 개신교5. 직분(한국 기준)6. 교파(한국 기준)
6.1. 이단, 사이비 종교로 간주되는 교파 (한국 장로회의 기준)
6.1.1. 시한부 종말론6.1.2. 귀신론, 무속신앙 결부6.1.3. 인간의 신격화6.1.4. 신앙치료, 영성치료6.1.5. 구원파6.1.6. 신비주의계
6.1.6.1. 통일교에서 분파6.1.6.2. 천부교에서 분파
6.1.7. 국외에서 유입6.1.8. 기타
7. 교회 협의체8. 비판 9. 세계의 개신교 통계
9.1. 서, 북유럽의 개신교9.2.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교
10. 개신교 관련 기관/단체11. 개신교 주요 교회12. 개신교 신자인 실존 인물
12.1. 국내12.2. 국외
13. 개신교 신자인 가상 인물1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www.allartnews.com/%E2%80%98Portrait-of-Johann-Friederich-the-Elector-of-Saxony-and-the-Reformers%E2%80%99.jpg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요도퀴스 판 로덴슈타인(Jodocus van Lodenstein, 1620-1677)

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1]


改新敎

16세기 경,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된 복음주의 성향의 신생 기독교 교파들을 두루 일컫는 말. ‘복음주의 교회’(독일어: Evangelische Kirche)라고도 부른다.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의 원어 표기는 Protestant 에서 유래했기에 일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로 한다. 기독교에서, 어디까지가 개신교의 범주인지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종교 개혁 1세대 종파들로부터 거듭 파생된 종파들도 일반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

2. 상세[편집]

개신교라는 교파는 없다. 기독교의 어떤 경향을 공유하는 여러 교파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기독(基督)은 크리스토스, 즉 그리스도의 한자 음차어이므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3]. 기독교는 개신교의 동의어가 아니며, 개신교라는 단일한 종교는 없다.

하지만 개신교가 기독교와 동의어로 생각할 정도의 용어를 차지한 것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의 학교병원 등을 세우는 포교 방식과 해방 이후의 개신교 국가 미국의 영향 등으로 개신교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기독교라고 하면 보통 개신교를 떠올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기독교보다는 천주교라고 스스로를 칭한 영향도 있다.[4]

일단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는 개신교의 출발점이라고 할수 있는 종교개혁 당시 1517년부터 나온것은 아니다.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다가 1520년 가톨릭 교회의 파문, 1521년 제국 의회의 추방령을 받고 나서도 가톨릭 교회는 물론 루터나 루터의 지지자들까지도 분열이 일시적인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몇년 후에야 실질적인 개신교회의 설립이 이어졌다.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기존의 교회를 개혁하는 입장에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성경적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전통보다 성경을 우위에 놓으며 전통보다는 성경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를 자처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로마교회의 전통으로 오염된 초기 기독교를 회복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 자체는 1529년 신성로마제국 2차 슈파이어 제국 회의(Diet of Speyer (1529))에서부터 등장했는데 마르틴 루터의 복음주의에 찬성하고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6개 제후 14개 제국도시 대표들이 "Verbum Dei manet in aeternum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도다.)"는 구호를 소매에 적으며 등장하자 이들을 제국의회에서 가리켜 라틴어 Protestantes(항의자)에서 따와 항의자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기존 종교개혁 입장의 루터와 루터 지지자들이 가톨릭교회와 황제의 이단선고에 반발하여 1520년 마르틴 루터와 지지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이 내려졌고, 세속적으로는 1521년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회의에서 제국의회 구성원 400여 명의 대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톨릭교회와 황제가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내렸지만, 황제 카를 5세가 1526년 1차 슈파이어 제국 회의에서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으로 대(對) 투르크 전쟁협조와 과세를 위해 기존 추방령을 번복하고 새로운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조치를 제한하며 공의회에서 루터파가 주장하는 교회 개혁 문제를 다루기로 하였는데, 카를 5세와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이 끝나며 강화하자 다시 이전 결정을 번복하여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다시 때렸고, 신교도 제후와 제국도시들은 이 결정에 항의했다. 루터파 제후들과 제국도시는 루터와 루터파에 내려진 제국 추방령도 적법절차에 따른 공소가 아니여서 무효이며 [5] 후속 조치 또한 당연히 무효라고 항변한 것.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으로 절대 이단이 아닐 뿐더러, 세속적으로 여전히 황제에게 충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1529년 2차 슈파이어 제국회의 직후, 1530년에는 루터파 교회에서 루터파 교리선언에 해당하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을 제출하고, 기존 교회와 교인들(가톨릭)에게도 공존을 요구하였지만 황제와 가톨릭 교회세력이 다수 의석을 장악한 제국의회에서 거부당했고, 교회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편 14세기 중반 160여 년 전 현재 개신교와 유사한 기존 가톨릭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잉글랜드에서도 있었는데 존 위클리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톨릭 교회에선 롤라드파(Lollardy)라 불렀었다. 롤라드는 "중얼거리는자" 는 뜻으로 이들이 성경을 외우고 다니는것을 미친놈 취급한 비하어 였으며, 1517년부터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마르틴 루터에 찬성한 세력들을 지칭하는 루터파란 용어도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며 루터를 믿는 이단이라 하여 Lutheran루터추종자라 불렀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하에서 나온말은 맞다. 프로테스탄트란 말은 좀 속된말로, 지금으로 치면 "빼애액! 거리는자들"이란 의미다. (반대로 루터파에선 기존 가톨릭 교회를 기독교가 아닌 로마추종자, 교황추종자(Papist)라고 비하했다.)

현재의 개신교는 대체로 16세기 이후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교황의 수위권을 부정하며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파들을 통칭해서 개신교라고 부른다. 또한 개신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들도 역시 개신교라고 불린다. (다만 여호와의 증인처럼 더 이상 개신교를 자처하지 않는 종파들은 제외.)

그러나 앞서 기원 자체가 서방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기독교 종파들의 집합으로 여겼기 때문에 현재에도 '어디까지가 개신교 종파인가?'라는 합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말이냐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루터파, 칼뱅파(츠빙글리), 재세례파, 영국국교회(성공회) 같이 현재에도 개신교도로 묶어주는 종파들은 서로를 같은 신앙을 가진 무리로 여기지 않았고, 서로가 반목했으며 서로 자신들을 진정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로마 교회에서 이단 선고를 받았다는 점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개신교도 전체를 겨냥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6],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7], 17세기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기존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 국가와 황제에 맞선 루터파, 칼뱅파, 당시 영국국교회였던 성공회는 비로소 로마교회에 대항하는 공동의 신앙을 가졌다고 여기게 된다.

결론적으로 개신교의 정체성은 16세기 로마교회에서 이단으로 구분한 수동적 기준에서 출발한 것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 로마 가톨릭의 입장이 농후한 시선이고, 보다 바른 복음과 진리를 향한 능동적 기준에서 세속적으로 분리된 복음주의 프로테스탄드들을 개신교의 정체성으로 역사가 기록한 것이 옳은 표현이다.

이후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개신교가 기존 가톨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통주의에 대한 태도다. 개신교는 성경을 교리의 유일한 근거로 여기는데 반해 가톨릭은 전통(전승)과 성경을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며, 성경은 전승의 일부가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 본다. 또한 개신교에선 가톨릭 교회가 전통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인정하는것도 반대하지만 가톨릭에서 성경해석 권한을 전통에서 찾기 때문에 사실상 전통이 성서위에 있다고보고 비판하고 있다.[8]

같은 개신교 내부에서도 전통주의에 대한 시각은 다른다. 개혁주의와 루터주의-성공회의 차이점이라면 후자는 전통을 성서의 해석과 충돌하지 않는다면 어느정도 인정하는것이고, 개혁주의 계통에선 성서에 나오지 않은 전통은 부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크게 기독교를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면,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서방에 속한다. 가톨릭과 사이는 둘째치고 서방교회에서 갈라져 나갔기 때문에 동방교회인 정교회보다 가톨릭 교회와의 신학적 공통점이 많다. 동서방 교회의 신학적 논점에 대해선 거의 모두 가톨릭 입장과 일치한다. 애초에 마르틴 루터가 신학적으로 교조로 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서방교부로 가톨릭 교회에서 정통으로 여기지만 동방교회에선 그닥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9]

3. 특징[편집]

파일:external/www.fgtv.org/mainimage.jpg
위 사진은 오순절 계열 교파인 순복음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 모습.

16세기 유럽에서 마르틴 루터장 칼뱅이 당시 가톨릭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많은데 비슷하긴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로마 제국에서 국교화 된 4세기 이래 당시 지배층들이 교계로 편입되면서 이러한 비판은 꾸준했고, 이후 천여년간 르네상스 시기가 특별히 교회의 타락상이 심한게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 시기 물론 그런 타락상도 비판내용에 있지만 중요한 건 종교개혁자들은 면벌부사제, 수도원, 신자들의 타락상은 중세의 신학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면죄부와 같은 현상은 부작용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초기 교회의 순수했던 신학을 되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했고 이러한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개신교회가 탄생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당시 왕이었던 헨리 8세가 적법한 남계 후계자를 낳기 위한 재혼을 위해서[10]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종교개혁의 기원은 발도파까지 기원이 올라가기도 하는데, 주요한 교리에서 지금의 개신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많아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위의 세력을 '종교개혁의 불씨'라고 하지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다.[11] 마르틴 루터 이전 성서중심 신앙을 강조한 영국의 존 위클리프얀 후스 또한 종교개혁의 선구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중세 가톨릭에서 교회의 타락만으로 개신교가 설립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는 어느정도 설명은 되어도 완전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 16세기 독일 지역의 면죄부 판매로 인하여 마르틴 루터와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처음 성공한 것이지 그 이전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례주의 중앙집권 성경중심의 신앙을 강조한 움직임은 계속 있어왔고 그 때마다 진압된것. 사실 초기 교부시대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으며[12]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와 식자층의 증가로 바티칸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오로지 성경에 모든 가치관의 기준을 둔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주의, 칼뱅주의, 재세례파 등은 선구자 루터의 영향은 받았으나 각자 서로 다른 정체성과 다른 신학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앞서 서술하다시피 그들은 가톨릭교회와의 종교갈등으로 같은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13]

현재는 성경에 대한 해석 차이 및 가톨릭 전통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성결교, 침례교 등의 많은 교파로 갈라졌으나 이들은 서로를 타교로 보지 않는다. 교회 제도나 강조하는 교리가 다를 뿐이지 다른 종교로 보지 않을뿐더러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다소 차이가 나는, 침례교/장로교에서 루터교/성공회로 교회를 옮겨도 개종이라 하지 않는다.[14] 반면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옮기는 것을 개종으로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초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마르틴 루터 쪽에서 가장 성경의 원형에 맞게 살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개신교파끼리의 성만찬 논쟁인데, 마르틴 루터는 신약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을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살이라고 한 것,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피라고 한 것을 두고 '빵에 예수의 몸이 내려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이론은 가톨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한 화체설(化體說)과는 차이가 있다. 빵은 빵일 뿐이며 그것이 신성한 육체로 변하지 않는 것이 큰 차이. 이에 반해 츠빙글리는 '상징적인 것'으로, 후기로 갈수록 종교개혁자들은 루터파와 개혁주의 계통에서도 활발한 논쟁이 이어졌으며 루터 생전에도 루터파의 필리프 멜란히톤, 개혁주의에선 마르틴 부처등이 둘 사이의 입장을 조절하며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한 세대 후 칼뱅주의에서는 둘 사이의 영적 임재설을 취한다. 현재까지도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개혁주의)의 차이점을 들자면 예정설과 더불어 성만찬 논쟁이다.

사제제도를 인정하는 성공회까지도[15] 만인사제설을 받아들였고, 나머지 교파에도 성직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사라는 지위는 목회를 이끄는 목회자에 해당하며, 교육자와 설교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칼뱅주의 장로회에서의 목사는 평신도인 장로와 같으며 설교하는 장로일 뿐이다. 장로와 감독(주교)제에 반대하는 회중교회에서는 회중(대중)에 뽑힌 자가 설교자를 할 정도로 성직자 계급을 반대한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수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16][17] 종교개혁자들은 소명(Vocatio)을 강조하여 세속적인 하찮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수도자성직자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신칭의에 따라 믿음 없는 수행과 수도행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또한 수도원들이 대부분 타락하여[18] 특권 집단화 되었기 때문에 영국, 독일 북부와 북유럽 국가들은 상당수의 수도원들을 폐쇄 및 파괴했다.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교회와 가장 큰 차이점을 일으킨 것은 루터가 재발견한 로마서의 이신칭의 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는 것은 성서의 사도 바울로마서의 핵심 문구[19][20]이며 반복되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의 통설은 교부시대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으로 가톨릭교회에서도 정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슨 차이이냐 싶지만 로마교회에선 유럽이 가톨릭으로 일원화되어 세속권력을 얻자 점차 세상사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사회에 개입하여 성서에 나와있지 않은 많은 문제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면서 윤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이신칭의 신학을 크게 내세울 수 없었다. 그리고 중세시기 스콜라 철학의 영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약화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가들이 더욱 엄격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에게 행위구원론이라 공격받는 것을 억울해 하듯이, 가톨릭에서 루터주의와 개신교의 이신칭의를 선행이 필요 없는 이상한 믿음이라 주장하는 것도 역시 무지에서 비롯된다. 루터에 따르면 신자들이 복음을 믿어서 구원 받는것과 별개로 율법에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선행은 그 결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이다. 중세 교회에서 행위를 중요시 하여 교회에서 정해 놓은 선행을 점수화 하여 사소한 일에도 수백년 수천년, 교회에서 정한 악행에 대해선 천문학적 시간 동안 연옥에 갇히는것으로 선전했고 그대신 교회에서 원하는 선행을 하면 (대부분 돈으로 면죄부 판매) 악행을 없애주는걸로 선전해왔기 때문에 중세인들은 선행을 구원론의 대가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중세시기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믿었고 벼라별 악행을 다 져지르고 면죄부사고 과거를 통째로 용서받고 하는 짓을 종교개혁자들은 용납하지 못 했다. 죄의 용서는 고해 성사같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해야하는것이라 가르쳤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하여 세속적 윤리를 엄격하게 강조한다.[21][22] 선행의 개념도 다르다 루터가 강조한 선행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한 성지순례 고행 금식 같은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선행으로 교회 전통의 성경적 근거가 불확실한 선행은 인정하지 않았다. 농부처럼 가난하고 자식이나 부양가족이 있는 자는 사실상 교회의 선행을 할 가망이 없고 사제계급을 독점한 유력계층의 독점물로 여겨졌는데 루터와 칼뱅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한낱 농부가 가족들을 부양하는것이나 농부의 아내가 그리스도인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사제들이 행위보다 더 가치가 높은 선행으로 여겼다.

이 처럼 중세가톨릭의 선행 개념은 몇 가지 오류를 범하기 쉬웠다.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하는 선행은 실생활과 동떨어진것들이었고, 보속의 대가를 선행으로 여겼기에 그동안 여러성인들의 공덕이 축적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선행의 보고'를 교회에서 독점적으로 관리하며, 신자들에게 나눠줄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세에 창설된 여러 특수 수도회가 서구사회에서 자선단체의 모태가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교육을 하거나 의료활동을 하는 식으로 수도회 바깥에서 회칙에 따라 사도직 활동을 벌였다. 하늘나라에 가고는 싶으나 죄로 인한 보속은 받기 번거로운 귀족이나 부유한 평신도들이 이 수도회들을 돈으로 많이 후원하였는데, 선행처럼 어려운 일들을 사제계급에 위임하고, 때에 따라 선행에 동참하는것으로 만족했다. 특히 흑사병 이후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점점 손쉬운 보속수단[23]을 점차 제공하기 시작했고, 면죄부는 상설적으로 팔리면서 기존의 이러한 선행들 조차도 하려하지 않고, 죄와 구원에 대한 것이 선행이라는 삯으로 사고 파는것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았다. 마르틴 루터에 따르면 의인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산다. 이를 반대로 보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곧 의인이다. 의인은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받는 사람이고 이 의인은 믿음과 구원의 약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대로 지상에서 실천한다. 즉 마르틴 루터에게 구원이란 믿음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진실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행과 구원이 약속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필연적으로 칭의전에 예정과 소명이 논리적으로 필요했기에 예정설 논란을 내포했다.)

그럼 '참된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어떻게 구분 가능한가?'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을 따르지 않았다.[24]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만이 안다 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성경에서 예수가 자신과 합한 자는 열매를 맺을 거라고 표현했기에, 마르틴 루터는 좋은 행위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닐지라도 '믿음의 증거'라는 논리를 폈다. [25]

하지만 후에 이것을 가지고 장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이전 종교개혁가 선배들의 노고를 집대성하여 정리하며 답을 제시했다.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지 여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나은 구원이 예정된 사람에게 그 모습을 참된 믿음으로 발현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인간이 선을 행할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부정하고[26], 예수십자가 수난을 오직 구원이 예정된 사람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개신교계에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장 칼뱅 본인마저도 모질게 들릴 수 있다고 인정할 정도. 이에 반대해서 아르미니우스나 존 웨슬리, 드와이트 요크 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이다'[27] 성화(聖化, 믿음 이후 올바르게 사는 삶), 최종적인 구원이란 여정을 말하였다.[28]

마르틴 루터장 칼뱅이 주장한 것들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개신교 신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예수 천국 불신지옥 문구 자체는 일단 모든 개신교에서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개신교의 구원론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것이고, 믿지않으면 지옥불속에 다이빙 한다고 협박하여 강제개종하는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신칭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종교개혁 시기엔 전 유럽이 기독교 신자였고, 딱히 잘못된 믿음이라 생각하는 가톨릭에 맞서거나 신앙을 지키려는 측면이 강했지 비종교인을 세뇌하여 개종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유럽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았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문구는 사도시절에만 해당한다고 보는게 통설이었기 때문.[29] 이 때문에 비교적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헤른후터(모라비아 형제회)와 감리교, 침례교가 선교활동을 먼저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1793년 인도에 파송된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라 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개신교에 대한 부가 설명이 필요한데, 장로교가 다수이고,[30][31] 장로회를 뺀 나머지 가운데도 감리교[32]가 큰 비중을 차지하여, 종파가 생각보다 다양하지는 않다. 이는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장로회와 감리회 외에 침례회와 성결교회, 하나님의 성회(순복음교회) 등이 있다. 유럽에서 세가 강한 개신교의 맏형인 루터교회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 들어온데다 교회 수도 압도적으로 적어서 듣보잡 취급이고, 세계 개신교 최대 종파인 성공회도 역시 교세가 약하다.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교리적으로는 이신칭의와 유일구원설을 믿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지만 성모승천, 무염시태설, 평생동정설 등 마리아 숭배적 교리들은 거부하며, 마리아가 성도들을 대신해 중보기도를 한다거나 중보자 노릇을 한다는 가톨릭 교리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예배 형태나 건축, 의복 등 하드웨어 상으로는 가톨릭과 유사하며 특히 대한성공회는 고교회파여서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하드웨어 상의 이질감이 루터교회나 성공회가 아무래도 따로 노는 듯 보이는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33]

이 양대 종파가 서로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헐뜯고 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개신교 종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이 잦은 상황에서 문제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밝힐 때에만 개신교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특정 교회 및 인물의 잘못이 전 종파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으나, 또한 절대 다수의 장로회가 다른 개신교 교단들과 다른 점을 아는 신자들도 적다. 장로교는 개교회중심주의라 교회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34]

개신교 종파에 따라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공경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데, 개신교 에큐메니컬 진영의 교단에서도 일단 이것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단취급하는 교회도 있으며(물론 에큐메니컬 진영은 가톨릭에 대해 대체적으로 '이단'으로 낙인찍기보다는 '오류가 있는 교회'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더 비판적인 교단(반 에큐메니컬)은 잘못된 전통을 넘어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선포된[35] 가톨릭의 마리아론 교리를 심각하게 보며 "이단도 아니라 이제 이교다" 라며 더더욱 부정적으로 본다.

사실 이문제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를 가로막는 커다른 장애물 까진 아니었다. 자세한것은 해당 문서 성모 마리아의 개신교 입장 문단 참조.

가톨릭의 개신교 비판 중에는 개신교가 가톨릭과는 달리 교리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황교황청이 중심인 반면, 개신교는 읽는 이에 따라 성경의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종파가 갈리게 된다. 단일한 권위체계가 존재하는 가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해석의 권위가 없어 분열이 필연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성서해석과 역사를 잘 모르는 의견일 뿐이다. 일단 성서 해석에 있어서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16세기 종교개혁시기에도 나왔는데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한 신학박사과정을 나온 마르틴 루터는 물론이고 개혁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장 칼뱅 조차도 가톨릭 교회의 기존 성서해석이 명백히 틀리지 않은 이상 기존 해석을 인정했다. 당시 개혁자들의 성서 해석 문제 제기는 중세후기 스콜라 철학의 연구와 방법론은 물론, 14세기부터 제기된 인문주의의 연구성과를 이어 받은것이고 구체적으로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나 에라스무스등의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 연구가 뒷바침 된 것이지 당시에도 이미 여러 연구성과로 인하여 이의제기가 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가톨릭 교회의 정본 불가타판의 오역과 필사본 전수시 오류나 첨삭과 그로인한 잘못된 해석을 발견하여 원전연구를 재시도 한것이지 개인이 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비난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론 가톨릭 교회가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비록 전승상은 그렇다고 주장하나)것은 대단히 무리이며 착각이다. 로마교회는 이미 종교개혁 이전 동방교회와 격렬한 신학적 논쟁끝에 분열했었다. 기독교의 역사 초기만 좁게봐서도 교리상으로만 봐도 로마시대부터 영지주의, 도나투스파[36], 펠라기우스 주의[37] 시작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니케아 공의회부터 아리우스파 단성론등 주장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동서 분열 이후 서방교회에서 조차 교부시대때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나뉘었고,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대교부들의 입장이 통설로 정리되어 온 과정이 교회의 역사이다. 그리고 발도파처럼 개신교의 선구자급으로 가톨릭 교회의 내부 개혁을 주장하던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으면 열심히 이단으로 사냥하여 태워 박멸한것이 성공한것이지[38], 가톨릭 교회가 교황아래 한치의 의문점도 없이 2천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역사상 사실도 아니며, 꼭 옳은 점이라 여기지도 않는다.[39]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전통의 권위에 의존하여 초기 기독교와 멀어진 근본 원인이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 해석권한을 교황에 있다하여 (평신도에게 성경 금지, 성서 번역금지등) 지식을 독점하다 인문주의와 그에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에 공격을 받은것 처럼 권력있는이나많은이가 따르는것이 옳은것이 아니며, 따라서 인문주의 모토인 ad fontes(근본으로 돌아감)을 통하여 일반사제는 물론 평신도까지 성경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명백히 잘못된 가톨릭 전통주의와의 결별을 통해, '전통에 대한 맹종이 올바른 신앙인가'가 종교개혁시기 논제였고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의 권위로 대체하려는것이 당시 종교개혁 주의자들의 목표였다.

한국 개신교에 수백개의 교파들이 있음을 근거로 들면서 개신교의 분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수백개의 교단 중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으며 사회에 영향력을 가지는 교단은 일반적으로 10-20개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로회가 60% 이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장로회 내부에서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부르크 신앙고백등을 공통의 믿음으로 선언하는 교단만 같은 장로회 교단으로 인정하지 수백개의 교단이 나뉘어 삼국지 찍듯이 세력 다툼을 하는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타교로 볼지언정[40] 같은 개신교인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은 서로를 타교로 보지 않으며, 교회제도(감독제 등), 강조하는 교리(침례 등)등이 조금씩 다를 뿐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본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나뉘어서 반목 타령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로교, 침례교와 다르게 전통적인 전례에 부정적이지 않은(혹은 긍정적인) 루터교성공회도 타교로 보지 않는다.[41][42] 이들 교파는 모두 개신교라는 이름 아래 연합하고 있다.

개신교 교파의 분열상 자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고 미국이나 영국, 서북유럽에서도 한참때 일어났던 현상이다.[43]

그리고 통일된 중앙권위가 없음을 아쉬워 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이것은 가톨릭 교회의 중앙집권화 된 역사 이래 수많은 오류와 범죄들을 보면 꼭 좋은것만으로 보기 어려우며 개신교의 교회정치 시스템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를들어 나치시대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과 나치정권의 정교협약에 침묵을 지킬것을 명령 받았으나 개신교는 일원화된 구조가 아니라 나치가 조직한 '독일인 교회'에 반발한 목사들이 고백교회를 만들어 반 나치 투쟁을 벌였고, 우리나라에선 선교사와 모국 교단 교회 내부에서도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 끝에 신념에 따라 참배를 거부한 인물들이 현재까지 존경 받으나[44] 한국 가톨릭 교회는 로마와 일본 가톨릭 교회의 명령에 순응하여 일찌감치 모두 신사참배에 굴복했고 저항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불거진 면도 없진 않으나 개신교는 의외로 기본이 민주주의와 자치주의이다. 장로제와 회중제가 바로 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고 개교회주의는 루터의 (지방자치적) 지역교회론에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요소인데 이는 카톨릭의 권위주의, 중앙집권주의를 깡그리 부정하면서 나온 요소들이며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윗 문단처럼 일부 반가톨릭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교회론을 일종의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보편성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쉬운 구조라는 점 역시 사실이다.[45]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부터가 종교개혁 시기를 통해 나온 것이다. 한국, 미국처럼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표방하는 나라들조차 개신교는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는 경우가 잦고 영국과 북유럽에서는 아예 국교회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한 나라/지역에서 자생하여 유독 그 지역에서만 교세가 강한 교파는 역사적으로도 민족주의/국가주의와 결합하려는 시도가 흔히 있어왔다. 영국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독일의 루터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 현재의 성공회나 루터교회은 전세계에 퍼져 각 나라마다 관구 또는 교구를 두고 있고 각 관구가 서로 평등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이런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해진 상황이다. 비교적 최근에 분파되어 한 지역에서만 꽤 큰 교세를 유지하는 교파라면 위 사실을 항상 상기하여 다른 교파, 더 나아가 기독교 교단들의 연합 기구와의 교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 시기 가톨릭의 금육 금식[46]을 비판한 역사에, 오로지 성경만을 신조로 삼는 교리상 신약성서 바울의 서신에서 유대인의 율법중에 음식에 대한것은 지킬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현재 개신교는 전 세계 종교들을 통틀어서 시크교와 함께 육식에 매우 관대한 종교이기도 하다.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개신교 문화권은 고기 요리가 발달한 경우가 많다.[47] 대표적으로 영국과 북유럽.[48] 그리고 장 칼뱅의 청부(淸富)사상이나 막스 베버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 입장에서는 현세적, 속물적이라고 까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교파마다 다르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하지 말자. 참고로 칼뱅은 루터를 우습게 여겼을 정도의 금욕주의자였다. 스위스 목사로 있을 때도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전력이 있다. 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에 대해선 종파마다 달라서 애매한 편이지만 가급적 피하는 종파가 많다. 특히 미국이나 그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경향이 강하다.[49] 현재는 구한말 시절 외국 선교사가 보기에 지나치게 술 담배 노름에 빠져있던 민중들에 거듭난 삶을 보여주길 바라는 측면에서 술담배를 금지했는데 현재에는 이전보단 많이 풀렸다. 적어도 술 담배 한다고 지옥간다고 하는 목사는 없다.[50] 다만 장로회에선 목사들은 술 담배 금지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한다.[51]

진보, 중도 성향의 교단 한정으로 성(性)에 관한 교리가 (이혼, 피임, 낙태를 절대 금지하는 등의) 가톨릭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다만 동성애의 경우, 진보 교단은 가톨릭보다 유연하고(일부 교단에서는 동성애자가 목회자/성직자가 되는 것도 허용할 정도), 보수 교단은 가톨릭보다도 빡빡하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가 평신도로 입교하는 것도 금지.)[52]

개신교 교단 중 대부분은 성호긋기, 십자고상,[53] 제단에 촛불 놓는 것,[54] 성만찬의 화체설(성변화) 등을 가톨릭의 잔재 혹은 비성경적인 행위라 하여 배척한다.[55] 또한 가톨릭의 교황 중심적 교회관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톨릭 신자에 대한 멸칭인 Papist(교황주의자, 교황숭배자)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

상술했듯 대체로 전통이나 인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반면,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외관적인 면에서 당대의 최첨단 기술과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아예 자유민주주의[56]산업 혁명 등을 비롯한 현대 문명이 만들어지는 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영향이 매우 강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즉, 철저하게 'Semper Reformanda' 정신에 의거하여 종교개혁자의 의견이라도 현대 기준에서 성경에 어긋난다고 증명되면 비판하고 폐할 정도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종교라 볼 수 있다.

개신교의 원리 중 만인사제설과 성경자유해석은 교파의 분열과 이단의 난립을 낳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탈권위주의적 교회론과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씨앗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오직 성경은 현대 근본주의의 씨앗이 되다는 비판도 있다.

세계에서 건물 크기가 가장 작은 교회는 크로스 아일랜드 채플.[57]

4. 한국의 개신교[편집]

5. 직분(한국 기준)[편집]

  • 목회자

    • 목사 - 만30세 이상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합격한 뒤 목사 안수를 받은 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전도사로 남는 사람도 있다. 몇몇 교단에서는 추가로 기혼자로서 자녀를 두고 있어야 안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는 교파도 있고, 남녀 모두 목사가 될 수 있는 교파도 있다. 천주교/성공회 신자들은 성직자 중 사제급이라고 이해하면 쉽다.[58]

    • 강도사/준목/수련목 - 몇몇 개신교단에서만 채택한 직위로, 전도사와 목사 사이의 위치에 있다. '준목사' 또는 '목사 후보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강도사 고시를 합격해야 하며, 설교는 할 수 있으나 교회 운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 예장고신과 예장합동에서는 강도사, 기장에서는 준목이라 하고, 감리교에서는 수련목이라고 한다. 예장통합, 침례교, 성결교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직위가 없으며, 전도사에서 바로 목사가 된다. 대체로 주일학교나 청년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 전도사 -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에 목회활동을 하는 자 또는 목사고시 미이수자.

  • 평신도

    • 장로 - 만 40세 이상으로 기혼에 10년 이상 같은 교회를 다닌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 대부분의 교단에선 남자만 가능하나 예장통합을 비롯한 몇몇 교단은 여자도 장로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천주교/성공회의 사제급.[59]

    • 권사 - 만 30세 이상으로 기혼에 5년 이상 같은 교회를 다닌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는 여자만이 가능하나, 한국기독교장로회와 감리회에서는 남자도 권사로 임명될 수 있다.

    • 집사 - 만 30세 이상으로 기혼에 세례교인인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 장로회에서는 안수집사와 서리집사로 구분되는데, 서리집사는 앞의 조건에만 맞고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으면 무난하게 선출된다. 안수집사부터는 선출이 까다롭다. 서리집사는 남녀 불문이지만, 안수집사는 남자만 가능하다. 천주교/성공회의 부제급. 순교자 스테판 집사도 천주교/성공회에서는 스테판 부제라고 부른다.[60]

  • 기타

    • 감독(총관) - 감리교의 직책으로, 한 지역/교구를 관장하여 그 지역 내의 교회들을 치리한다. 천주교/성공회주교급.[61] 장로교나 침례교는 개교회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감독/주교에 대응되는 직책이 없다. 대감독(대총관)은 몇 개의 교구를 묶어 관장한다. 천주교/성공회의 대주교급.

    • 감리사 - 역시 감리교의 직책이며, 감독 밑에서 한 지역/교구 내 교회들을 치리한다. 천주교의 부주교급.

    • 지방회장 및 교단 총회장 - 아무리 개교회주의가 강한 교단들이라해도, 해당 지역 내에서 같은 교단의 교회들끼리 연합해야할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지방회라는 형식으로 연합을 하는데, 그 회의의 수장이 지방회장이다. 지방회가 감리교/성공회/천주교의 교구와 같은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지방회장도 감독/주교와 같은 힘은 없다. 교단 총회장은 말 그대로 해당 교단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굳이 들자면 천주교/성공회의 대주교 정도 되겠으나, 그 권위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 간사 - 주로 큰 교회에서 설교를 제외한, 특수한 업무를 맡기기 위해 두는 경우가 많다.

6. 교파(한국 기준)[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Protestant_branches.svg.png

위에서부터 재세례파, 오순절교회, 재림파[62], 성결교, 침례교[63], 개혁교회, 장로교, 조합교회론, 청교도, 감리교, 성공회, 경건주의, 루터교회

파일:B9d06ID.png

개신교는 성경 해석, 기본 교리, 전례 및 교단 조직에 따라 여러 분파가 존재하므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실정이다. 따라서

  • 1.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 2. 신학적, 교회사적으로 서방 교회에서 파생되었으나

  • 3.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교황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교파들로서,

  • 4. 외경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으면[64][65]

일반적으로 개신교로 간주한다.

문화체육부에서 발간한 '2011년 한국의 종교현황'에서는 이단으로 치부되는 교단 포함 총 118개의 교단이 등록되어 있다.

  • 감리회

    • 기독교 대한 감리회

    • 예수교 대한 감리회: 후술된 이단종파인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JMS)과는 전혀 다르다.

  • 복음교회 -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교파다.

    •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 성결교회

    •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 대한 기독교 나사렛 성결회

    •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

    • 기독교 한국 성결회

  • 장로회[67]

    • 대한 예수교 장로회

      •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가장 먼저 생긴 분파.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갈라져나왔다.[68] 현재는 합동과 함께 보수적인 신학을 대표하는 교단이 되었다.

      •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에큐메니컬 운동과 WCC 가입 문제로 합동과 갈라졌다. 굳이 말하자면 중도적인 교파. 그러나 신학적 의미의 기계적, 산술적 중립은 아님에 주의할 것.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합동-통합으로 갈라진 이후로 교권 문제로 인해 계속 갈라져서, 정식으로 등록된 분파만 200개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개신교가 전래된 이후에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구분이 생겼지만, 한국에는 이미 갈라진 상태에서 들어왔다보니 더더욱 분파가 많이 생긴 것이다.

    • 그 외 중.소규모 및 군소교단

    • 한국 기독교 장로회
      통합과 합동이 갈라지기 전에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갈려나온 교단이다. 그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분파가 아니다. 분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성서무오설[69]축자영감설을 가능한 한 존중하지만[70], 기장은 성서비평학을 수용함으로써 성경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세오경모세 저작설을 부인한 것인데, 이런 이유로 한국기독교장로회 설립자인 김재준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직에서 제명 처리되었다.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인 교파다. 일각에서 해당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다룬다고 묘사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후기 자유주의 신학,[71] 그리고 신정통주의[72]이다.[73]

  • 침례회

    • 기독교 한국 침례회

    • 성서 침례교회: 아래의 성경침례교와는 다르다.

6.1. 이단, 사이비 종교로 간주되는 교파 (한국 장로회의 기준)[편집]

출처: <교회와 신앙> 2009년 10월호 발표.
이단/문제단체 목록 중 교파만 간추림. 단 이 명단은 한국 개신교중에서도 장로교의 기준이다. 해당 인터넷 신문의 발행주체가 장로교이기 때문. 애당초 한국은 세속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특정 종파를 주류 종파와 핵심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을 규정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해당 목록 중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같은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이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편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계에서는 가톨릭을 이단으로 본다.[75] 대표적인 이가 합정동교회[76] 김효성 목사. 김효성 목사의 천주교 비평.[77][78] 그것보다 굳이 규정·구분 할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하자면 대부분 여러가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단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기의 이유로 적당히 걸러 볼 것.

6.1.1. 시한부 종말론[편집]

6.1.2. 귀신론, 무속신앙 결부[편집]

  • 서울성락교회(김기동) - '베뢰아'. 귀신론 등으로 논란이 된 교회. 그간 해온 성경 해석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한다는 조건으로 예장통합으로부터 사면되었다가 예장통합 내부 문제로 다시 철회.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문서 참고.

  • 진주초대교회(전태식) - 귀신론, 이중아담론 등 이단적인 주장. 헌금 강요.

  • 레마선교회(이명범) - 양태론, 창조론, 이중아담론 등 이단적인 주장을 함. 이명범 목사는 문제 제기된 부분을 돌이키고, 예장통합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가 예장통합 내부 문제로 다시 철회.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문서 참고.

  • 할렐루야기도원(김계화) - 무속에 가까운 비기독교적인 기복신앙 및 광신적인 집회 등.

  • 대한예수교 장로회(전도총회) - 일명 류광수 다락방. 양태론, 기독론 등 이단적인 교리가 문제시 됨.#[79] 2013년 1월 14일 한기총에 의에 이단이 아님이 판명되어 더이상의 논란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이는 다락방의 희망사항일뿐으로 다수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다락방으로 인해 한기총과 한교연이 분리되었을 정도이다. 특히 이단에 대한 규정을 자제하는 감리교회마저도 다락방을 신천지나 통일교와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 부산제일교회(박무수) - 4단계 회개론이라 하여 회개의 단계 중에 헌금을 집어넣고 헌금을 해야만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주장.

6.1.3. 인간의 신격화[편집]

  • 지방교회 - 인간의 신격화 등을 주장. 기존 교회 부정. 이 교파는 이단 논란으로 말이 많은 교파이니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 한농복구회 (구 엘리야복음선교원) - 인간이 신이 된다는 주장. 집단농장식 경영.

  • 신천지 - 교주 이만희 신격화, 인간을 통한 구원 주장.

6.1.4. 신앙치료, 영성치료[편집]

  • 밤빌리아추수꾼 - 영성치료를 주장하며 인간을 신격화.

  • 인천주님의교회(김용두) - 교주 본인의 신격화 및 비성경적인 신비주의적 주장.

  •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 - 안식일, 유월절, 어머니 하나님(장길자) 설파.

6.1.5. 구원파[편집]

  • 구원파 - 기독교의 구원관을 왜곡, 회개할 필요없이 구원됐다고 믿는 것만으로 구원된다고 주장. (구원파의 주장은 구원 전 회개는 필요한 것이며 구원 후에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기에 죄를 용서해달라는 회개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죄의 유혹에 빠질때 하나님의 방향으로 돌이켜 바라보는 의미의 회개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믿음이라는 것도 주류 종파와는 다르다. 특히 처음에는 일반적인 성경 해석 등을 가르쳐주며 문제없는 곳으로 위장하지만, 어느정도 관심을 얻은 후에는 바로 구원파 교리로 들어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구원파에는 3가지 분파가 있다.

6.1.6. 신비주의계[편집]


파일:/image/262/2014/06/25/201405160500020_1_99_20150225165005.jpg
통일교와 천부교는 공통적으로 김백문이스라엘 수도원에서 분파하였다. 이스라엘 수도원은 다시 그 뿌리를 찾자면 일제 강점기 이용도의 신비주의, 김성도의 새주파 등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정득은피가름 교리도 합쳐졌다. 이들 교파는 대개 일제강점기에 활동했으며 현대에는 없어졌으나, 통일교와 천부교 그리고 그 분파들을 남기며 오늘날까지 한국 신흥종교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6.1.6.1. 통일교에서 분파[편집]
  • 통일교 - 이제 개신교에서 상당히 멀어졌지만 태생이 이단.

  • JMS(예수교대한감리회 진리측, 국제크리스천연합, 기독교복음선교회) - 정명석.

6.1.6.2. 천부교에서 분파[편집]

6.1.7. 국외에서 유입[편집]

6.1.8. 기타[편집]

  • 대한예수교 장로회(혁신총회) - 산하에 남서울신학교를 가지고 있다. 연옥교리 주장으로 이단취급.

  • 새생활영성훈련원(박철수) - 이단적 사상운동으로 문제시됨.

  • 여호와새일교 - 말일복음이라 하여 사탄이 공산당이라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함. 이 교회 소속 전도사로 보이는 노인 2명이 알몸으로 트럭 위에 서서 '2월 20일 오후 6시 북괴 김정일은 남침한다' 라는 식의 선전을 한 장면이 짤방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광화문 일대에서 확성기로 반공설교하는 새일계열 트럭이 랜덤 인카운터한다.

  • 사랑하는 교회(舊큰믿음교회) (변승우) - 자신들은 성령 운동이라고하지만 문제 많은 신사도운동의 근원지, 부패한 기성종파 비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 주장하였고,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단이 되었다.[80] 반(半)펠라기우스주의처럼 보이지만 웨슬리안 아르미니우스주의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웨슬리안인 감리교회나 성결교회에 대한 모독이다. 서울에 개척한지 10년 만에 2만 명에 육박하는 초고속 성장세로 인해 기득권 교단들로부터 이단시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나 교세가 크다고 이단이 될리는 없다. 기존교회들에 부딪히는 자신들의 교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못하기에 나오는 소리다 . 원래 이름은 큰믿음교회였으나 부목사가 마트에서 여성을 몰카 도촬하는게 걸려 사회문제가 되기도하였고, 그 부목사는 교회 자체의 자정작용을 위해 출교하였다. 문제 제기된 부분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예장 통합교단에서 특별사면하였다가 예장통합에서 다시 철회하였는데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를 참고하기 바란다.

  • 기타 예수쟁이, 개독교, 사이비종교 문서 참조.

7. 교회 협의체[편집]

한국의 개신교 연합 기구

보수 성향 교단

진보 성향 교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개신교란 단일 종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여러 교파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영국 성공회, 북유럽 루터교회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국왕이 교회에 관여 할 수 없다.[81] 그렇다고 해서 한국 불교의 조계종처럼 교계 전체를 대표할 만한 대다수 종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학파가 있는 이슬람순니파랑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외적으로 개신교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회 협의체가 있다. 한국 개신교에는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진보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있다. 2013년에는 한기총의 급진적인 이단 해제 및 선거 부정 등으로 인해 반발한 교단들이 갈라져 나온 한국교회연합이 새로 생겼다.

2017년 1월에는 갈라져 있던 한교연과 한기총이 한국교회총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그 동안 둘 중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던 교단인 예장고신과 예장합동도 참여한다.

  • 한국교회연합(CCIK) (홈페이지)
    한기총을 탈퇴한 교단들이 성립한 협의체.

    • 회원 교단

      • 그리스도의교회 교역자협의회

      • 기독교대한감리회(성회)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서대문)

      •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 대한예수교복음교회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개혁, 백석 등)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홈페이지)
    1924년 9월 24일 결성된 조선 예수교 연합 공의회를 전신으로 하며,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따라 각국별 교회 협의회(NCC)로 개편되었다. 사회 운동, 민주화 운동, 남북통일 운동, 교회 일치(에큐메니컬) 운동 및 타 종교 간 대화 운동 등에서 대체로 진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82]

    이 가운데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와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기독교 한국 루터회는 한기총에도 복수 가입해 있었지만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은 한기총에서 탈퇴했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홈페이지)
    약칭 '한기총'. 1989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교단들을 주축으로 결성된[83], 교회 협의체로서, KNCC와 달리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나타낸다.

    • 회원 교단

      •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 총회

      • 기독교 대한 감리회(연합)

      • 루터교회

      • 성결교(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한기총을 탈퇴)[84]

      • 오순절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합동, 고신 탈퇴)

      • 침례교[85]

    보다시피 구세군, 대한성공회, 정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위에 언급된 군소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연합'과 다른), 예장 통합, 합동, 고신을 제외한 교단들은 한기총에 가입해 있다.[86] 한편 위의 교단 이외에도 케이블/위성 채널인 기독교TV(CTS) 등도 한기총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한때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과 대학생 선교단체인 CCC한국창조과학회(!!!)도 회원이었으나 월드비전과, CCC는 각각 2011년과 2014년에 탈퇴, 한국창조과학회는 회비를 안내서 탈퇴당했다.

8. 비판 [편집]

8.1. 종교인 과세 논란[편집]

세금 내겠다니까요? 그러니 법제화는 하지 마시고...[87] -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박 모

국민개세주의, 누구나 세금을 낸다 이런 원칙에 저희가 동의하기 때문에... -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남전 스님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교인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려고 추진 중이었다. 현재 천주교는 이미 납세를 하고있고,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는 찬성하고 있는데, 유독 개신교 (개신교가아니라 한기총에서 반대하고있다. 이미 한기총은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보기엔 무리가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기총항목을 참조)]만 반대를 고수하고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림교회천주교이미 수십년 전부터 교단 차원에서 모든 성직자의 세금을 자진납부해왔다. 오랜 기간 이 두 교회만이 성직자 납세를 하고 있었으나, 대한성공회가 2012년에 성직자의 자진 납세를 교단 차원에서 결의함으로서 이에 합류했다.[88] 또한, 개신교 내 몇몇 교단의 경우에는 자진납세를 교단 주체로 실시하고있다.

사실 개신교 목사 중에도 세금 납부에 찬성하자는 의견이 상당수가 있지만 한기총 등의 협의체에서 권력을 가진 먹사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개신교 전체가 반대를 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89] 먹사들이 만든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교회가 80%가 넘고, 신도 수가 100명이 넘지 못하는 교회는 그 수치를 상회한다. 목사의 평균임금이 250만원 정도인것으로 조사되었고, 연소득이 4,000만원 이하인 사람들도 많은데 세금을 냄으로서 받을 수 있는 4대보험등의 혜택을 거절하고 반대할 리가 없다.

개신교 거대교회의 목사들 중에는 청빈은 사실상 밥말아먹은 먹사들이 많다.[90] 돈벌이로 목사짓하는 먹사들 중에는 연봉이 1억이 넘는 경우도 있고, 거기다 무슨 명목으로 수십~수백 억의 돈을 따로 챙기는 먹사도 있다. 이런 먹사들에게 목사는 종교인이 아니라 그냥 직업일 뿐이며 따라서 이들한테 세금을 물리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조차 세금 내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91] 목사들도 성경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 정도는 당연한 상식이다.

개신교계에서 권력을 가진 거대 교회의 먹사들은 종교의 본질을 침해한다(이중과세라느니 가난한 목회자도 많다느니)고 하는데[92] 그냥 자기들이 돈내기 싫어서 하는 헛소리다. 어쨋거나 2015년 12월 국회에서 드디어 종교인 과세 조항을 넣은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행은 한참 뒤에 하게 되어 있으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사실 소규모 작은 교회나 중형교회까지는 별로 뭐라 안하는데 대형교회분들은 어디가 찔리시는지 극구 반대 입장이다.


9. 세계의 개신교 통계[편집]

이 부분은 영어 위키백과Protestantism by country 항목을 토대로 하여 작성되었다.

  • 세계 최다 개신교 신자 보유국은 역시 미국으로, 약 1억 6,500여만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전체 인구 대비로 봤을 때는 100명 중 46명이 개신교 신자로 주류이긴 하나, 사회적 다수는 아닌 편이다. 서, 북유럽 개신교는 과거에 비해 사실상 쇠퇴한 추세이기 때문에(이에 대해서는 후술) 미국 이외에 실질적으로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파워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을 들자면 개신교가 성장하고 있는 중남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국가들 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권역별로 나누어 보면 개신교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아메리카이며, 전체 인구 대비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유럽이다. 반면 북아프리카는 전체 개신교 신자 수로 보나 인구 대비로 보나 꼴찌다.

  • 개신교회에서 종종 세계 기독교인이 많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전세계 인구 70%가 기독교인이라느니~ 이런 과대광고를 하며 종교적 우월의식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신자는 전 세계 인구의 32% 정도이며, 이는 개신교만 집계한것도 아니고 모든 기독교 교파들을 전부 합친 것. 고든콘웰신학교 부설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에 따르면 개신교인 숫자는 7억 남짓으로 추정되는데, 전세계 인구 12% 수준이다.

9.1. 서, 북유럽의 개신교[편집]

북서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개신교가 한국의 유교처럼 열성적으로 믿어야 할 종교라기 보다는 그냥 하나의 문화적 요소 정도로 녹아들어가 버렸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대다수가 개신교랑 소원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독일, 스웨덴 등 루터교 국가들은 아예 세금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반동이 1960년대 이후의 자유주의, 무신론 정서와 맞물려서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교회를 다니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의 국민들의 대부분은 호구 조사 등 관료제적 편의나 그냥 늘 그래 왔으니 태어났을 때 교회에 이름을 등록하고 세례를 받으며 청소년때는 성인식을 겸한 입교식을 형식적으로 치루지만, 정작 교회 출석은 주로 크리스마스, 부활절 혹은 관혼상제시에만 하는 경우가 많아 유로바로미터등에서 내놓은 설문 조사를 보면 제대로 된 크리스천보다 무종교인 내지는 나이롱 신자들이 많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형식적으로 기독교인이라 답한 사람들도 막상 신이 존재하냐고 또 물어보면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자처럼 답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유럽의 개신교가 2차대전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탓도 분명 있지만, 반대로 사상적인 균형을 잡지 못한 것도 교회 몰락에 일조했다는 주장이 있다. '불편한 진실'이긴 하지만, 원래 개신교의 핵심 자체가 "참 인간이면서 참 하나님인 예수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어야 구원받는 것"인데, 이를 배타주의 혹은 근본주의로 여기고 배척해 버리니 날이 갈수록 신자들은 교회에 가거나 신앙생활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매우 약해졌고, 심지어 출석수 감소로 인해 노인정화되거나 아예 문닫고 다른 용도의 건물로 개조되는 교회들도 흔하다.

물론 이런 브레이크 풀린 세속화 경향에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신앙을 지켜내려는 진정으로 독실하고 신실한 신자들도 당연히 많다.[94] 거기에 지역별로 들어가면 좀 차이가 있으며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같은 경우 국지적으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이 많고 사회적 영향력도 미국이나 비유럽권 못지않은 곳이 존재하기도 한다[95]

그럼에도 북, 서유럽의 개신교는 가톨릭과 타종교에 대한 경쟁력을 이미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고 설상가상으로 샤머니즘이나 불교 등 타종교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유럽인들도 늘어나다 보니 한국 개신교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제 유럽 개신교는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9.2.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교[편집]

중남미는 잘알다시피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문화권으로 알려져 있다. 단, 실제로 와 보면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성당에 안 가본지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태반이다.[96] 모태신앙으로서 다들 세례는 받고,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자각은 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매주 성당에 다니고 미사를 드리는 것과는 다른 개념.

반면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교도들에 비해 신앙심의 정도나 정기적 예배 비율이 월등히 높다. 사실 멕시코뿐 아니라 20세기 말부터 계속된 근래의 중남미 아메리카 지역의 기독교 종교분포가 대부분 이런 추세[97]이다.

최근 중남미 지역의 전반적인 추세에 따라 주류 가톨릭 교세는 주춤하고 서서히 낮아지는 반면, 개신교, 독립교회나 기타 그리스도교 종파 인구가 늘어나기도 한다. 과거 한국이 그랬듯 장로교, 감리교오순절교회 위주로 성장하는것도 주목할 만한 요소. 이는 다양한 악기를 쓰고 체험적 은사를 강요하는 오순절교회의 특징이 감성을 중시하는 중남미인들의 성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란 시각이 있다. 또한 주로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는 나라는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나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이고 멕시코는 아직까지 가톨릭이 굳건하게 80% 이상을 유지하지만 개신교도 10% 이상으로 상당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개신교가 비공식적 집계로 거의 20~30% 가깝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잊혀졌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개신교 역본인 레이나-발레라 성경과 아우메이다 헤세비다 성경의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는 중. 이정도면 거의 21세기판 종교개혁 수준이다.

한편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는 원래부터 미국 영향을 받아 개신교가 15% 정도로 상당수였다. 미국 본토에 이주한 푸에르토리칸 장로교 신자도 꽤 있다. 코스타리카도 개신교도가 15%정도에 달한다.

아프리카 역시 기독교, 그 중에서 복음주의적 교회가 급속도로 폭증하고 있는 추세다. 이미 여러 통계에서는 개신교의 중심이 서, 북유럽, 북미의 북반구에서 중남미, 아프리카의 남반구로 이동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개신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가톨릭의 권위주의와 경직성에 실망한 사람들이 대거 이동해 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성장하는 개신교를 엄밀히 살펴보면 흔히 생각하는 정통 개신교보다는[98] 오순절교회 및 그 파생교파의 비중이 더 높은 편이며 일부 토착신앙적인 요소와 섞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순절주의나 복음주의 교파들은 대체로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그 어떤 개신교 교파들보다 더욱 강조하는 편인데 이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상당히 잘 먹혀들어가는 요소이다. 말하자면 1960~80년대 한국의 개신교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가톨릭은 침략자에 의해 강요받은 종교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강하다는 점도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중남미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스페인과 가톨릭에 원한을 가진 원주민들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해방신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며, 중남미의 오순절교회가 진보 성향이 강하고 국가에 따라서는 좌파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99]

다만 오순절 주도로 성장한 만큼. 아무래도 신학적, 교리적 기반은 아직 탄탄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 현지 개신교인들 중에도 성장세인 건 좋은데 잘못된 교리로 막나가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도 대놓고 한국 개신교를 벤치마킹하는 경향도 많다 보니[100] 기복신앙 논란이나 이단시비, 개신교 근본주의 담론과 이에 따른 전통문화 훼손 등의 문제점도 닮아가고 있다.

10. 개신교 관련 기관/단체[편집]

11. 개신교 주요 교회[편집]

12. 개신교 신자인 실존 인물[편집]

  • 가독성 향상을 위해 가나다 순 및 모음 순서(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순)대로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12.1. 국내[편집]

12.2. 국외[편집]

13. 개신교 신자인 가상 인물[편집]

개신교 신자는 일반적으로 천주교정교회 신자에 비해서 전통과 전례를 기피하고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되어[104] 신비로운 면이 부족해서인지 그런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편이다.
개신교를 소재로 하는 종교 소설이나 종교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개신교 신자이니 여기에서는 제외하겠다.[105]

14. 관련 문서[편집]

[1]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시기 모토였다. 오직 성경은 성경이외 다른 권위를 인정치 않으며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정확하겐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뜻에 가깝다. 루터파 신학자 필리프 멜란히톤의 해설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 칭의받고,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sola gratia justificamus et sola fide justificamur)"[2] 경우에 따라서는 루터 이전의 후스파처럼 종교 개혁 0세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3]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종교라는 것이 의미상으로 더 명확하다.[4]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의 신도수 역전은 1905년 이후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개신교인들이 많이 연루되어서(105인 사건중 92명, 민족대표 33인중 16인, 김구, 안창호, 김규식, 여운형등 독립운동가들) 개신교가 사회적 주류 종교로 올라왔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초기 개신교 인구는 1.1~1.3%에 불과했다. 1950년대 후반에도 개신교 인구비율은 3% 대였다. 개신교는 물론이고 천주교 신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건 1960년대 이후다.[5] 카를 5세는 1519년 황제 선거시의 공약과 1520년 대관식 때 재차 서약하여 적법한 절차가 아니면 제국추방령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6] 16세기 후반 가톨릭 예수회와 펠리페 2세의 주도로 스페인 치하 베네룩스와 프랑스내 스페인령, 남독일과 폴란드에서 개신교도 색출을 위한 마녀사냥이 성행했다.[7] 교황청에서 모든 로마 교회의 종을 울리며 기념주화까지 찍어낼정도로 바오로 4세가 매우 기뻐했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개신교의 결집을 가져와 종교갈등이 더 심화되었다.[8] 이는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에서 반대 입장의 큰 논거다. 가톨릭 교회에서 전통을 근거로한 교리를 하나라도 철회 할 수 없다고 미리 선포했기 때문.[9]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10세기 경에야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동방에 소개되었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10] 드라마의 영향으로 헨리 8세앤 불린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조강지처 아라곤의 캐서린을 버리고 이혼한 걸로 알지만, 사실 헨리 8세가 이혼을 시도한 건 앤 불린이 7세 때부터였고, 적법한 결혼에서 낳은 왕자가 없으면 튜더 왕조가 단절될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혼 전후로도 권력을 이용하거나 아부꾼들이 여자들을 상납하여 수많은 여자들을 후렸고 남자 사생아도 두었다.[11] 다만 현재 후스파와 발도파는 개신교로 편입되어 있다. 참고로 후스파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교회로는 1918년에 루터교와 칼뱅교가 통합되어 생긴 체코 복음주의 형제회(Českobratrská církev evangelická)와 1920년 천주교 내 일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천주교를 빠져나온 뒤 만든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Církev československá husitská)가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발도파는 발도 복음교회(Chiesa Evangelica Valdese)로 발전했다.[12] 교황 연대기 저자 존 줄리어스 노위치는 르네상스 시대 15~16세기 보다 11~12세기가 더 타락했다고 본다. 그 이전에도 중세 교회의 타락상은 여전했다.[13] 다만 재세례파 일부는 예외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나란히 박해했다. 유니테리언도 마찬가지.[14]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교회를 옮기는 것을 굳이 말리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교인들 사이에서 그 사람 신앙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나보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15] 고해성사가 필수가 아니라는 것 =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16] 성공회는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으로 수도회를 부활시켰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옆에 위치한 성가수녀회가 유명하다.[17] 루터교회는 20세기 이후 수도회를 부활시켰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실레아 슐링크가 바로 독일 루터교 자매회 수녀다.[18] 쉽게 생각해서 고려말 사찰과 조선시대말기 서원의 폐해를 생각해보면 된다. 면세혜택과 치외법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생긴 폐해다.[19]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개역개정판)[2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개역개정판)[21] 이 점에서 성리학과 통했기 때문에 구한말 유림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개종할 수 있었다.[22] 다만 이러한 점 때문에 20세기 이후 북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경직성에 학을 때고 개신교를 멀리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23] 15세기 초반 교황청 분열시기를 마무리하며 황폐화된 로마 재개발을 위해 재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희년을 자주 선포하며 순례객들을 모았고 교회에선 면죄부를 팔고, 탁발수도자들은 성유물을 팔았다. 특별한 이벤트로만 팔던 면죄부는 그 영역을 넓혀가며 과거행위에 대한 면벌수단, 죽은자를 위한 면벌로 확대되었고 16세기 무렵엔 상설판매 된다. 95개조 반박문의 직접적인 원인이던 도미니코회 요하네스 테첼은 아직 짓지도 않은 미래에 지을 죄까지 사면한다고 선전했다.[24] 과격 재세례파들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고난받는자가 선택된 백성이라면서 지배계급을 처단하는것을 정당화 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때 농민들의 폭동에 대해서 비판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으나 고난받는이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그분만이 아신다"라며 지지를 거부했다.[25] 다만 믿는다고 해서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날수 없다. 복음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칭해지지만 여전히 율법아래선 죄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가톨릭 처럼 때에 따라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씼는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회개하며 살아야 하는것이다. 루터 신학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의인인 동시에 완전히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율법적 죄를 부정하는 것은 초기교부 시대부터나 종교개혁시기에도 비판받은 이단 논리였고, 17세기 이후 이전의 종교개혁 신앙의 선배들의 열정에 비하면 현저하게 영성이 내려간 상태에서 등따습고 배불러지자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라며 느슨한 신앙을 유지했었고 서로간에 죄, 회개, 구원 이라는 말을 교인들에게 말하는 자체가 금기시 된 시절이 있었는데 이는 종교편의적 발상(불편한것은 외면하고, 믿고 싶은것만 믿는것) 이라며 역시 크게 비판받은 태도다.[26] 사실 칼뱅의 예정설은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자유의지의 영향을 거의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는 자유의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중에 선한것이 있으나 균형추가 악에 크게 기울어서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다 본다면 루터는 자유의지는 악으로 완전히 타락하여 죄를 지을수 밖에 없다는 견해. 일단 칼뱅의 예정설을 한 마디로 잘라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이론이고 그 갈래도 매우 다양하며 칼뱅 이후에도 보충적인 해석을 덧붙인 신학자들이 많았다. 사실 칼뱅 본인은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구원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27] 일부 침례교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를 이단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피해를 보고 있는 교회들도 많다고 한다.[28] 성화가 성경에 없다는 소리가 있는데 중생(重生, 거듭남)과 성화 (거듭남 후의 삶)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단순 발음 드립이면 할말이 없다.[29] 칼뱅조차 선교는 기독교 국가의 영역이지 교회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루터주의나 칼뱅주의나 기존 가톨릭 신자나 사제를 대상으로 개혁신앙으로 변모하길 바란것이지 지평선 넘어 이교도들을 찾아다니는걸 생각하지 않았다. 출처: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그 위험 한 사상의 역사》[30] 한국 개신교 전체 신자 약 1000만 중 65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31] 장로회 내부에선 에큐메니컬 문제로 갈라진 합동, 통합 양대교단이 절대 다수이고 여러 교단이 있지만 군소교단의 세는 미미하며 10여개 교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32] 약 150만[33]루터교는 좀 애매한게, 일단 장로회, 감리교, 침례교등 다른 개신교 교단 신자들이 보기에는 생소하거나 어색한 요소들이 많기에 좀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한국 개신교의 사실 상 표준 성경인 개역개정판을 주로 쓰고, 예배에 쓰이는 용어도 타 교단과 크게 차이가 안나며, 다섯 솔라등을 강조하는 등 개신교적인 정체성에 꽤 뚜렸하기 때문에 크게 이질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또한, 대한성공회와는 다르게 예배당을 가르키는 말도 '교회', 목회자도 '목사'이고, 교회 인테리어도 몆몆 교회에 십자고상이 있는 정도를 제외하면 장로회, 감리회등과 대단히 차이가 큰건 아니기도 하고... 또한, 한국의 루터회는 신학적으로 대체로 중도적이기도 해서, 예장 고신 등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들과도 은근 교류가 있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단들과도 교류가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 색체가 강한 대한성공회보다는 이질감이 적은 편이다.[34]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이신칭의론은 엄밀히 따지면 아르미니우스와 칼뱅의 신학이 혼합된 양상을 띄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나 한국의 개신교, 근본주의의 병폐 그리고 한국 교회의 타락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신광은 저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참조.) [35] 그것도 교황무류성으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 이 교리에 반발하여 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파가 복고 가톨릭교회.[36] 북아프리카에 농촌과 산악지역에서 로마 국교화 이전 배교자 출신 주교들을 거부하며 로마국교화로 타락한 기독교를 거부한 세력.[37] 브리튼섬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은혜없이 선행으로 완전해 질수 있다 주장. 일시적으로는 로마에서 인기를 끌었다.[38] 사실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에도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선고했고, 이단은 두들겨 패서라도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게 교부들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단일화된 목소리가 항상 옳았다 주장하는것은 별개다.[39]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개신교 출현이전 공의회주의 출현, 19세기 교황 무류성 교리 선포 이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며 일갈한 영국의 가톨릭 신자역사학자 액턴 경의 경우처럼 가톨릭 내부에서도 절대 단일한 목소리만 나오는것은 아니다.[40] 특히 반에큐메니컬 계열 보수 교단. 교회일치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교단들은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본다.[41] 장로교에서 루터교를 아예 타교처럼 봤다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성공회는 특히 보수적인 교파에서 미묘하게 보는게 사실인데, 이는 대한성공회가 유독 보편교회(가톨릭)주의를 강조하는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그렇다.[42] 원래 감리교도 전통적인 전례에 부정적이지 않은 교파이다. 해외에 나가면 성호를 긋는 감리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한감리교는 장로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전례적인 요소를 많이 없엤다.[43] 사실 같은 교파라고 해서 교회 분위기나 목사의 신학 스타일이 다를수도 있고 다른 교파 교회랑 더 같을수도 있다. 개교회 주의가 강하다.[44] 그러나 이와 별개로, 신사참배에 순응했단 이유 하나만으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보 성향의 교단을 조리돌림하고 배척하는 행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45] 성공회의 교회론에 대해 에큐메니즘 차원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한스 큉도 이러한 점을 우려하였다.[46] 금요일엔 금식, 사순절 기간엔 고기는 물론 버터 금지 양고기를 먹을땐 양젖금지 등 계율을 어길경우 중죄로 거의 지킬수 없는 보속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스스로 발가벗겨서 회초리로 피가나도록 매질하고 성벽 몇바퀴 몇일동안 돌기, 강제 성지순례 등…[47] 애초에 종교개혁 3인방중 하나인 울리히 츠빙글리가 금육일을 어기고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을 옹호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48] 독일도 마찬가지다. 루터교회권인 니더작센 요리가톨릭권에 속하는 라인란트 요리를 비교해 보자.[49] 하지만 유럽 개신교도 완전금지까지는 아니나 술, 담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다. 일례로 덴마크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은 술을 아무데서나 살 수 없는데 이는 국교인 루터교회의 영향이다.[50] 성서에서는 술취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했지만 술 마시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즉 성서대로라면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건 괜찮지만 실제 그렇게 양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금주령이 된 것이다.[51] 구약에서 나실인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성직자에게도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52] 가톨릭에서는 동성 간 육체관계 및 동성결혼은 단호히 반대하나, 동성애자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존엄한 인간이므로, 사랑과 친절로서 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런 성향을 절제하여 동성 간 육체관계 및 동성결혼을 하지 않고 정결하게 살아가려 한다면, 가톨릭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53] 루터교의 경우도 십자고상이 아닌 십자가 틀만 부착하는 사례가 있다.[54] 장식으로 양초만 놓고 불은 안 켜는 경우도 있다.[55] 화체설은 모든 교단이 부인하나 성공회의 경우 딱히 말리진 않는다.[56] 중세 가톨릭의 신정정치, 권위주의를 타파하려고 나온 것이 개신교다. 특히 청교도들의 사상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57]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은 교회(이를 개신교에서는 초교파 교회라고 부른다.)이며, 전례적으로는 성공회를 따른다고 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가톨릭 성당텍사스에 있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성당'이다.[58]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지, 신학적으로 들어가면 목사와 사제는 크게 다르다. 일단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다. 평신도 중에 교회를 이끄는 사람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59] 목사도 사제급이라면서 왜 장로도 사제급인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원래 장로교에서는 목사도 설교를 하는 장로이다.[60] 단, 부제는 평신도가 아니고 성직자이다. 천주교/성공회에서는 평신도들에게는 직분을 주지 않는다. 형제/자매일 뿐. 예를 들어 베네딕토 형제님/그라시아 자매님...[61] 감리교는 주교제가 확고한 성공회에서 분립되어 나온 교파로, 감독제라는 일종의 주교제를 유지하고있다. 주교제의 3성직인 주교-사제-부제는 각각 감독제의 감독-목사-집사에 대응된다.[6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여기에서 출발했다.[63] 침례교 내에서는 종교 개혁기 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이미 가톨릭의 약식 세례에 반대하며 침례를 주장했다고 하는 곳도 있다.[64] 가톨릭은 외경들 중 7권을 제 2 정경으로 부르고 있다.[65] 개신교에서는 교파에 따라 외경정경만큼은 아니지만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보기도 하고(성공회와 일부 루터교회), 경전으로서의 가치나 의미가 없는 책으로 생각하기도 하며(대다수의 개신교), 심하게는 오히려 신앙에 해를 끼치는 책으로 여기기도 한다.(장로교 및 개혁교회) 장로교회에서 왜 외경을 이렇게 가혹하게 대우하는 지가 궁금하다면 토빗기를 한 번 찬찬히 읽어보자. 물고기 내장을 넣은 향로에 불을 붙이니 악마가 도망가는 것, 사람으로 변신한 천사가 악마를 잡으러 다니는 것, 악마를 지구상 어딘가에 봉인해놓은 것... 등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독교의 모습과 일치하는 모습인지 위키러들의 판단에 맡긴다.[66]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교단으로 알려져있지만, 세계의 다른 성공회 관구들 가운데에서는 특별히 진보적인 부류에 들지 않는다. 미국 성공회가 동성애자 성직자 인정 문제를 놓고 세계 성공회로 부터 3년간 관구 자격 정지를 당할 때 일본성공회와 함께 이 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는 동성애자 성직자를 인정하라는 의견을 낸 것이 아니라, 관구로서의 자격 정지라는 처벌을 다시 생각해달라는 의견을 낸 것이었다고 한다.[67] 계열 교단이 너무 많으므로 각 교단별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해당 교단의 분열이 현재의 장로회 교단 분열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만을 기재함. 자세한 각 교단의 현황은 '장로회' 문서에서 확인 바람.[68] 사실 60년에 합동 측과 합친 적이 있다. 애초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서 '합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때 두 교단이 '합동' 한 것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러나 양측 교단 사이의 의견 차이로 결국 2~3년 만에 다시 양 교단이 분리하였다.[69] 단 극단적인 근본주의자가 아닌 이상,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한 성서무오설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으로 보긴 힘들다. 대부분의 경우 축자영감설보단 유기체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경우가 더 많으며 구원의 지침으로서의 성경의 무오를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70] 분파에 따라 이에 관한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 보수적인 고신과 합동계열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비교적 중도에 가까운 통합에서는 그보다는 덜하다.[71] 20세기 초까지 유행했던 자유주의 신학이 과학 기술의 진보를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제국주의 등에 경도되어 있던 것과 달리, 후기 자유주의는 생태주의나 페미니즘, 동성애 허용 등 급진적인 면이 강하다.[72] 실제로 신정통주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카를 바르트가 살던 시대의 자유주의는 현대의 후기 자유주의가 아닌, 슐라이어마허 등으로 대표되는 1세대 자유주의 신학을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관련 링크를 참조하자.[73]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기장 정도의 스탠스가 보통 일반적인 교단들의 성향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개신교가 보수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74] 교파에 따라 이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75] 물론 천주교 보수파에서도 개신교를 지옥행 익스프레스로 간주한다.단, 천주교 공식 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공식적으로 이단시 하진 않는다.[76] 공식 홈페이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독립 장로교회. 1967년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창시자 백영희 목사의 친동생인 백영익 목사(1918~2011)가 설립하였고 1994년 그가 은퇴하면서 김효성 목사가 2대 목사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재직중이다. 본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이었으나 1985년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에 가입하였고 1996년 예장총공회를 탈퇴하여 현재는 '보수장로교친교회'의 모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고신이나 합신, 재건, 순장, 총공회는 물론 극보수 교단인 계신보다도 더 극단적인 근본주의 성향의 교회로 가톨릭뿐 아니라 기장, 예장통합 등의 에큐메니컬 성향 개신교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적, 적대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으며 이 때문에 교계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교회이다.[77] 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미국 Faith 신학교와 밥 존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서울 수색동 서부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서부교회를 떠난 후 1979년 합동 교단의 대분열 당시 합동보수에 가담하였다가 예장총공회 서울공회로 옮겼으며, 합정동교회에 부임한 이후 서울공회가 온건보수 노선으로 전향하는 데 반발하여 1996년 총공회를 탈퇴하고 보수장로교친교회를 조직하였다.[78] 엄밀하게 따지면 이단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도 없이 천주교는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참된 기독교는 정통적인 개신교 교파들 뿐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개개의 교인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개신교라 하더라도 교단마다 천주교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일단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조하는 진보~중도보수 교단들은 천주교를 이단으로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예장통합은 2014년 총회에서 천주교를 '우리와 다른 전통의 교회이자 교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는 있으나 이단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개신교를 신앙의 형제들로 인정하지만, 사도전승이 없기 때문에 '정통 교회'는 아니라고 본다. 천주교와 정교회가 보편성 정통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교회로 인정하는 것은 서로뿐이다.[79] 2011년 6월 21일 해체 후 대한예수교 장로회(개혁)으로 영입되었다.[80]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며,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관은 가톨릭 구원관과 비슷하다.[81] 수장이란 소리가 나왔는데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일 뿐이다. 영국국교회 시절 수장 지위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이미 포기했고, 위임받은 통치자(Governor)란 직위를 쓴다. 북유럽 루터파 교회도 마르틴 루터가 당시에 세속군주는 교회를 보호할 책임만 있고 간섭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어놨다.[82] 물론 예장 통합 및 기하성(순복음) 계열은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적어도 교회 일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83] 정작 그들은 모두 떠났다.[84]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기성)는 한때 KNCC 회원 교단이었으나, 1960년대에 탈퇴함. 성결교 역시 예장과 마찬가지로 WCC 가입을 놓고 교단이 분열되었는데, 이때 기성 교단의 방침에 반발하여 갈라져 나온 게 바로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예성)다. 후에 기성은 예성과의 재통합을 위해 KNCC를 탈퇴했으나, 양 교단의 재통합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85] 기독교대한침례회 탈퇴....인줄 알았는데 탈퇴를 보류했다고 한다.[86] 그러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합동, 고신이라는 big 3 교단들이 2012~2013년 차례로 떨어져 나가면서 개신교에 대한 대표성을 급격하게 상실하였다.[87] 법제화하지 말라는 얘기는 시간이 지나서 잠잠해지면 예전처럼 세금 안 내겠다는 가능성이 농후하다.[88] 납세를 하는 세 교파가 모두 주교제 등 강력한 조직력을 갖는 교파라는 점이 흥미롭다. 납세가 주교제 탓할 문제냐고...[89] 어느 종교단체에서나 권력과 돈이 있는 곳에는 종교인은 없고 추악한 인간의 본성만 있다.[90] 천주교 신부님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의 개신교 목사들이나 불교 승려들도 어디어디 보살이라고 간판 내걸고 점쳐주는 사이비 외에는 정말 가난하게 생활한다. 어떠한 종교건 종교인의 청렴함을 강조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재산을 대거 축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91] 성경에서도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줘라"고 말한다. 즉 세금 제대로 내라는 얘기. 그리고 베드로에게 자신의 세금도 납부하라고 지시한 내용도 있다.[92] 반대의 이유로 드는 가난한 목회자들은 오히려 종교인과세를 지지한다.[93] 투발루를 순위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는 6위.[94] 이슬람 이민자와 난민 급증으로 인해 이러한 위기감은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95] 그러나 주의할 점은, 북유럽에서 바이블벨트로 인식되는 지역에 대한 타 지역인들의 인식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고, 바이블벨트 내 교인들의 대다수는 국교회보다는 신학적 전통과 기반이 다소 약한 오순절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순절 신학 특성상 동성애나 낙태 등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보수적인 경우가 많아 진보적인 북유럽 사회 내에서 인식이 좋지 않음은 물론, 그 수도 줄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개혁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많으며 사정은 북유럽 국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96] 일례로 중남미 국민들의 정기적 주일미사 성당 출석율은 40~50% 정도 된다.[97] 활력을 잃어가는 가톨릭과 성장하는 개신교[98] 물론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와 같은 정통 개신교 교회들도 늘어나는 편이다.[99] 조영현, 《21세기 라틴아메리카 종교 파노라마: 위기에 처한 가톨릭 교회》가 출처.[100] 한국 다음으로 가장 큰 개신교 교회가 있는 나라가 다름아닌 칠레이다.[101] 게다가, 출석하는 교회도 한국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지목된 류광수 다락방 교회(그 중 임마누엘 서울교회를 다니며, 서울에 있는 임마누엘 교회와는 다르다.)라 이단 시비가 많이 붙는다.[102] 성공회 복음주의파(저교회파).[103] 성공회 내 저교회파 사제를 '목사'로 칭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고교회파 사제는 그냥 '신부'.[104] 하지만 개신교라도 성공회는 타 종파에 비하면 보편교회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라 얘기가 달라진다. 이러다보니 아예 성공회를 개신교의 분파인 줄 모르거나 가톨릭의 한 갈래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사실 무조건 개신교는 수수하고 천주교는 화려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은 먼나라 이웃나라 등의 매체에서의 단편적인 설명에서 기인했을 공산이 크다. 당장 중세시대 역사만 보더라도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천주교 수도원도 있었고, 개신교 교회면서 화려하고 웅장하며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니.[105] 예를 들면 <To Save a Life> 같은 영화[106] 개나리에게 당한 이후 시장통에서 개신교의 찬송가 테이프('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개역찬송가 기준으로 445장)를 틀어놓고 구걸을 했다. 진짜로 '개신교도가 되었다'기보다는 개나리에게 당해 불구가 된 이후 의지할 곳이 없어 기댈 차원에서 귀의했을 공산이 크다. 「조폭아가씨 2부」에서 등장한 평행세계의 황산도(여기선 조폭 두목) 야사희에게 '새벽기도 가야한다'고 말한 걸보면 이 작품의 황산도 개신교도일 공산이 있다. 조폭은 어떨지 몰라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진의 경우 자신들이 악행을 저지른다는 걸 알아서 속죄한다는 느낌인지는 몰라도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으니 아주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의외로 김성모의 작품 여기저기서 개신교의 영향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쾌산고」에서는 강건마가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직접 읊기도 하고(물론 작품 특성상 이상한 결론을 도출해냈지만 「럭키짱」의 풍호는 노아의 방주이야기를 꺼냈으며(정경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외경이나 유대전승에서 나온 이야기를 인용한 듯하다) 「돌아온 럭키짱」에서도 강건마가 '난 교회는 안 다니지만 믿음은 알아.'라는 대사를 날리고 반강제로 대동고로 전학을 간 전사독은 스스로 성격을 고치기 위해 '교회를 다녀볼까?'라고 독백을 했다. 이외에도 개신교도가 아니면 모를만한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는 편인데 실제로 김화백이 개신교도인지 아니면 그저 한때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지는 확인 바람. 대털 2부에 의하면 교강용의 캐릭터 모티브가 된 김강용씨가 출소하면서 손을 씻고 개신교도가 되었다고 했으니 여기서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107] 아버지가 자살하기 전엔 분명히 개신교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는 불확실하다.[108] 네드는 말할 것도 없고 마지도 꽤 독실하다. 사실 네드가 '난 비틀즈가 예수보다 좋다'라는 발언을 한 걸 보면 실질적으론 마지가 더 독실할 지도 모른다.[109] 십자가 목걸이 및 십자가와 관련된 연출, 이름 및 순교자적인 역할로 볼 때 기독교인일 가능성이 높다. 단 교파는 단정짓기 어렵다.[110] 단 이쪽은 그냥 개신교 미션스쿨이라고만 나와서 불확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