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per
 

강용석

최근 수정 시각: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룹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서를 수정하기 전에 가급적 먼저 우측 상단의 토론 탭에서 토론 스레드를 개설해서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권장합니다. 임의로 수정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무위키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분류는 이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틀을 추가하실 때는 문서의 하단에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이나 그 하위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강용석(康容碩)

출생

1969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중구

신체

180cm, 75kg

본관

신천 강씨

학력

신석초등학교
신천중학교
경기고등학교[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LL.M.

정치 입문

2008년 제 18대 국회의원

방송 데뷔

2012년 TV조선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

가족

2남 2녀 중 차남,
부인, 아들 강원준, 강인준, 강세준

트위터

트위터[2]

블로그

블로그

페이스북

페이스북[3], 팬페이지

종교

개신교(순복음교회)


파일:attachment/061110021a40.jpg

1. 개략2. 생애
2.1. 정치인2.2. 방송인으로 전향
2.2.1. 방송 활동
3. 파워블로거4. 사건사고
4.1. 국회의원 당선 이전4.2. 국회의원 당선 이후
4.2.1. 아나운서 비하 발언4.2.2. 박원순 허위학력 의혹 제기4.2.3. 박원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제기 사건4.2.4. 최효종 고소사건4.2.5. '왕후장상 영유종호' 발언 논란 취중진담4.2.6. NLL 관련 발언4.2.7. 불륜 소송
4.2.7.1. 사건 전개
5. 선거이력6. 여담

1. 개략[편집]

대한민국변호사, 방송인, 정치인, 前 국회의원. K 가수

방송인에서 정치인이 된 케이스는 가끔 있지만, 이 사람의 경우에는 반대의 경우가 된 희귀 케이스. 물론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정계 복귀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발언하고 있고, 자신이 일으켰던 사건 때문에 완전히 등을 돌렸던 동료 정치인들과도 지금은 다시 연락을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는 몇몇 거물급 정치인도 끼어 있다. 누구인지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나무위키를 잃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따라서 그는 아직 정치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듯 하다. 자신이 출연하는 몇몇 매체에서 말하기를 방송일이 무척 재밌어서 당분간은 정치권으로 복귀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서울시장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썰전에서 말하길 국회의원으로 재기해도 계속 방송일도 병행하고 싶다고. 실제로 뒤에 언급되겠지만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상황에서 20대 총선을 통한 국회의원 복귀를 노리기도 했다.

2. 생애[편집]

1969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출생.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서울대 사법학과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군법무관으로 3년 동안 복무했다. 특수사관의 특성상 중위로 임관해서 대위로 전역했다.

그후 법률사무소를 개업해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1년에 연수 개념으로 하버드 로스쿨 1년 LLM(법학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하버드 LLM 시절에는 LLM 학생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4][5]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펼친 바 있다. 2001년에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이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명된 것을 정면비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1. 정치인[편집]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선거구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보다 앞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김성동에게 공천에서 밀렸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6년 1월 31일에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출마 및 새누리당 복당 신청 입장을 밝혔다 # 이에 썰전에서 같이 방송을 했던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예능이냐? 새누리당 입당 신청이나 해라.라고 일침을 날렸다.게다가 용산구에 이분이 있는데 김칫국...

2016년 2월1일에 강용석 전 의원이 새누리 서울시당(위원장 김용태)에 복당신청을 하였지만 복당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당헌·당규 당원규정 7조에서는 심사기준으로 당의 이념과 정강․ 정책에 뜻을 같이 하는 자, 당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 개혁의지가 투철한 자로 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다 탈당해야... 하지만 강용석 전 의원 같은 경우에는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와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기준으로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한 복당을 불허 하였다. 그 후 중앙당에 제소하였지만, 2016년 2월 15일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복당을 불허하여 새누리당 복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향후 강용석 전 의원의 정치행보는 추가바람.

2.2. 방송인으로 전향[편집]

2010년 7월 20일, 여기자 성희롱 사건으로, 국회의원 제명투표는 부결되었으나 한나라당은 제명 처분하였다. 그 후 경기고 동창인 작곡가 주영훈의 조언이 있었고, '비호감으로 밀어라'란 충고를 받고 연예계에 입문한 것이라고 강용석 본인이 방송에서 밝힌다.

최효종 사건으로 한참 악명을 떨치던 임기 말에 화성인 바이러스 고소집착男편에 출연하더니, 낙선 후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을 시작으로 방송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슈퍼스타K4에 도전하기도 했으며 강용석의 고소한 19의 진행을 맡으며 방송인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SNL 코리아의 Weekend Update의 진행자로 3주간 땜빵출연하기도 했다.

썰전에서 일반적인 논객들은 알기 힘든 전직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담을 풀어 놓고 있다. 전문 방송인들과 합을 척척 맞추는 예능감 탓에, 방송을 하면서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편이다. 강용석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방송을 정말 잘한다. 라고 인정한다. 알기 어려운 시사 관련 뉴스나 분석 등을 이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설명하는 방송인은 드물다. 진보 성향의 사람들조차도 방송만 계속 하면 좋아질 것 같다라고 하기도. 그의 자식들도 정치보단 방송을 하는 게 더 좋다고 할 정도. 참고로 썰전은 아나운서 발언을 처음 보도했던 중앙일보 계열의 JTBC에서 방영 중이다. 아름다운 화해 하지만 물론 이것도 개인차는 있어서 지저분한 이미지 세탁으로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많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때부터, 정치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한 거짓말까지 논란거리를 너무나도 많이 만들었기 때문.

그의 본업은 변호사. 법무법인 넥스트로의 대표변호사이다. 4인으로 구성된 로펌을 구성하여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그말인 즉, 현재 정치인은 아니다. 방송 등에서 언급하는 모습을 보면 주로 이혼 가사관련, 저작권 관련 소송을 주로 하는 듯 하다.[6]

한편 썰전 72화에서 박봄 마약 사건을 다룰 때, "마약 사건에 대해 입건유예라는 처분이 내려졌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했으며, 최소 검사장 이상의 고위 간부가 개입된 명백한 봐주기다." 라며 일침을 가한 바 있다. 그리고 입건유예는 정식 법률 용어가 아니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박봄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관뚜껑을 닫은 장본인이란 얘기도...

해당 발언은 짤과 영상을 통해 인터넷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고, 심지어 국민권익위에 재수사 청원까지 잇달았다. 그런데 언론은 청원이 쇄도했다고 보도

더 지니어스 시즌3에 출연이 확정되었다. 자세한 것은 강용석/더 지니어스 항목 참고.

2.2.1. 방송 활동[편집]

모두 하차한 상태이다.

3. 파워블로거[편집]

흑화하기 이전에는 공기업 지망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공기업 취업정보를 다양하고 자세하게 제공했기 때문. 모아서 책도 냈다. 다만 2010년 이후로 공기업 취업 정보의 업데이트는 멈춰있다.

썰전에서 말하길 블로그를 한 이유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싶어서 했다고 한다. 아마 사람들 입에 많이 오고내린 2010년부터는 블로그를 할 이유가 없어져서 정보 업데이트를 안 하는 가능성이 높다. 블로그의 글 자체는 2014년에도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본인이 직접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추가바람.

또한 인터넷에서 홍대 맛집 블로거 중 한 명으로 나름대로 입지가 있었다. 그래서 편의점 식품 리뷰로 위키에도 등록된 파워블로거 채다인홍대 맛집 블로거 강용석을 추억하며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 이 글을 본 강용석 본인이 이걸 또 피드백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그리고 tvN에서 자신이 진행하는 고소한 19의 이벤트로 2012년 12월 12일에 홍대에서 고소한 만찬이라는 주제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관련링크

2015년 8월 불륜 논란으로 출연 중이던 방송을 자진 하차하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2016년 1월부터는 페이스북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친구 제한으로 인해 페이지로 운영한다. 근데 보다보면 이게 정치인 페이스북인지 먹방인지(...) 더군다나 출마선언 이후에는 활동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 페이지를 사칭이라 생각한 한 사람이 진짜면 고소해도 된다고 댓글을 남겼는데, 강용석이 진짜로 인증해버렸다! 졸지에 페북스타가 되어버린 그 사람에게 애도를..

4. 사건사고[편집]

4.1. 국회의원 당선 이전[편집]

  • 사병 구타 사건
    공군 법무관 시절인 1995년에 사병을 구타한 사건이 있다. 사건 내용은 비행단내 항공유를 빼돌려 외부에 팔아먹는다는 제보를 받고, 주말이라 해당자들이 없어서 남아있는 병장 두 명에게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며 조사를 하는 중에 엉뚱한 변명을 하자 "웃기지 마!"라고 하고 원산폭격 시키고 몽둥이로 수 차례 때렸다고 한다. 이후 이 사건이 알려지자 사과했다.

    강용석의 해명은 자신이 공군부대 골프장 비리사건 수사로 높은 분들에게 밉보인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공군부대 마다 골프장이 있는데, 군에서 외부 민간인들을 사실상 회원 처럼 몇천만 원씩 받고 부킹 해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장부에 없는 돈을 받고 공군 장성에게 상납하던 관행을 강용석이 수사했다.

    이때문에 강용석이 높은 분들에게 밉보인 상태였는데, 사병 구타 사건이 일어 나고 일주일 후 사병들이 공군 본부와 언론사 몇 군데에 진정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즉, 사병들이 진정서를 언론에 보냈다는 사실이 수상하다는 것으로 골프장 비리사건 때문에 높은 분들이 뒤에서 조정한 것 같다는 게 강용석의 주장이다. 장성들이 사병들을 시켜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강용석의 의혹에는 일리가 있으나 똥별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똥별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승진철마다 투서질, 군인아파트에 괴문서 돌리기. 언론플레이이다 계급이 높다는 것을 이용하여 폭력에 의한 수사를 한 것은 빼도 박도 못 할 사실이다. 그의 주장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아무런 힘도, 선택권도 없는 사병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체 그 사병들더러 뭐 어쩌라는 것인가? 그들이 그 똥별들의 지시를 거부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2. 국회의원 당선 이후[편집]

4.2.1. 아나운서 비하 발언[편집]

강용석 최악의 흑역사 1부

(아나운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더라.


2010년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소속 20여 명의 남녀 대학생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위와 같은 요지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을 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와 물의를 빚었었다. 강용석은 초반엔 중앙일보에서 오보를 한 것이고 보도한 기자를 고소하겠다며 펄펄 뛰었지만, 조선일보매일경제 등에서도 강용석이 위와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이 주장의 신빙성은 희박해졌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출당처리되었고, 아나운서들로부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참고로 이 출당처분 때문에 강용석은 2015년까지 5년간 새누리당에 입당할 수 없다.

하지만 3일 뒤인 2월 25일 인터넷 공개방송을 통하여 4.11 19대 총선에 출마하겠단 뜻을 밝히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4.3%의 득표율로 낙선.

한편 검찰은 강용석의 행위에 대해 모욕죄와 무고죄 등으로 징역 2년을 구형하였다. 그리고 1심에서 6개월 징역, 1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4년 3월 27일 법원은 아나운서 비하발언이 개별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모욕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여 모욕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

2014년 8월 29일의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는 아나운서에 대한 모욕죄는 무죄, 자신의 발언을 최초로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에 대한 무고죄는 유죄를 인정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국회에 제명안이 올라갔으나, 무기명 투표 결과 재석의원 259명 중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명, 무효 8명으로 부결되어 제 식구 감싸주기 논란이 일어났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법원의 판결 이후, 이지애 前 아나운서는 2014년 9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용석에게 화해를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 강용석 변호사는 2014년 9월 25일 썰전 방송에서 아나운서 비하발언을 사과했다. 이로써 4년간 끌어온 강용석과 아나운서들간의 갈등은 일단은 일단락 되었다.

2015년 2월 23일엔 "형사재판에서 무고죄로 형사처벌을 받아 변호사로서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과태료 1천만 원 징계를 받았다. #

2015년 6월 7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하고 싶으면'이라는 제목으로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스폰서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관련기사

2015년 9월 22일 MBN '뉴스8'에서 앵커 김주하 아나운서가 강용석과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 하나 여쭙겠습니다. 예전에 아나운서가 되려면 모든 걸 다 줄 준비가 돼야 한다고 하셨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보이시는지요?"라고 질문, 어버버 하면서 "5년 전 발언까지... 저를 탈탈 터시려고 하십니까?"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고, 지적이고 품위가 느껴지십니다"하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 리타이어.7분 2초부터 보자. 표정이 볼 만 하다.

한편 본 사건은 형법 교과서(형법학도의 바이블 신호진 서)에 실리며 모욕죄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보고 지나치는 판례가 되었다. 사건번호는 2012도13189이다.

4.2.2. 박원순 허위학력 의혹 제기[편집]

강용석 대 박원순 1차전

강용석 버젼 타진요 사건이다. 2010년 10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스탠포드대학과 하버드 대학 객원 연구원 경력이 허위라고 주장하면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했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었다면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에도 당선무효로 서울시장직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방 스탠포드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해당 경력 확인 메일이 날아왔기 때문에 이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을 다룬 블로그 링크 참고. 이는 강용석이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4.2.3. 박원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제기 사건[편집]

강용석 대 박원순 2차전

박원순 아들의 MRI 사진을 입수하여 병역의혹을 제기했다.

2012년 2월 22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에 대한 병역의혹제기 과정에서 제보받았던 MRI 사진이 특이체질이란 설명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것임이 확인되었다.(세브란스병원) 박원순측은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용서한다고 하였다. 강용석은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사직서를 처리할 국회의장이 공석인 관계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국회의장은 박희태였는데,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사퇴했다.

그러나 2015년에 들어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에 대한 병역의혹이 다시 불거지며 재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특이체질도 조작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양승오를 비롯한 인물들이 해당 사진을 보고 이 사진만으로는 동일인임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친 상태이지만 새로운 증거는 확인된 바 없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양승오 박사 등 5인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이지만 일단 박원순 시장의 판정승.

자세한 이야기는 박원순 항목 참고

4.2.4. 최효종 고소사건[편집]

최효종 항목 참조.

4.2.5. '왕후장상 영유종호' 발언 논란 취중진담[편집]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의원을 거론하며 날렸던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 잘 만나는 것'이라는 취중 욕설 트윗과 함께 그의 과거 배경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기사. 해당 트윗 내용은 이런 식으로 패러디되곤 한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4.2.6. NLL 관련 발언[편집]

2013년 7월 썰전에 출연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NLL 포기로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기사 뿐만 아니라 '정문헌, 서상기는 사퇴해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해서 보수층의 반발을 샀다. 그 결과, 트위터의 여러 보수인사들이 강용석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심지어 팬클럽 이름이 바뀔 정도.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2013년 8월에는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과 촛불집회를 다수가 동원된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책 '강용석의 직설' 중에서는 "합참에 있으면서 NLL은 휴전선과 똑같은 국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휴전선을 바다에 그어 둔게 NLL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타협의 대상이라거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라고 쓰면서 반전으로, "썰전 방송은 목요일이지만 녹화는 월요일이라 그 사이에 국정원과 국방부가 'NLL 포기가 맞는다.'라며 입장을 표명하고 '발표 내용을 보니 공개된 전문보다 뭔가 숨겨진 게 더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며 자신이 정보를 전부 알지 못하니 국정원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한발 뺐다. 책이 나온 같은해인 2013년 8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자신이 전부 알지 못하니 국정원 말이 맞을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4.2.7. 불륜 소송[편집]

자신의 사건 의뢰인이었던 모 파워블로거와 불륜설에 휘말렸다.[9] 2015년 4월 24일 상대방의 남편이 1억 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강용석이 출연하는 방송의 제작진들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후 하차 문제를 논의할 것이란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가, 결국 모든 방송에서 자진하차의 형식으로 잠시 나오게 되었다.

현재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 블로거의 주장: 남편이 오히려 불륜 중이고 본인과 강용석은 불륜관계가 아니다. 였다가 말을 뒤집었다. 관심과 여론이 무서워 거짓말을 했다고. 강용석이 호텔 수영장에서 찍힌 사진도 가짜라고 주장했다가 현재는 인정.

  • 블로거 남편의 주장: 강용석과 배우자가 불륜을 해 가정이 파탄났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 강용석의 주장: 평범한 변호사와 고객 사이고 불륜은 100% 오해이다.

참고로 보통 이런 재판은 족히 2~3년은 걸리므로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인지 판단하는 건 무의미하다. 강용석이 홍콩에 가서 도도맘을 만난다는 사실을 부인에게 알리고 갔으면 그나마 불륜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박원순과 친한 선배 변호사이자 강용석의 장인어른인 윤재기국회의원이 엄청 쳤다고 한다.

4.2.7.1. 사건 전개[편집]

관계자 이름

직업

관계 및 소송 내용

강용석

변호사

B 씨를 상대로 공갈미수와 명예훼손으로 1억 원의 소송을 제기함.
B 씨와 법률대리인 구본주 변호사를 공갈, 업무상비밀누설, 통신비밀보호법 누설등의 혐으로 형사 고소함.
자신의 불륜의혹을 보도한 언론 매체를 고소함.

A 씨 (여성)
(= 도도맘 = 김미나)

미스코리아 출신의
블로거 겸 유튜버

B 씨와 이혼 소송중.
사문서 위조 혐의로 형사 고발됨.

B 씨 (남성)
(= 조 씨)

A 씨의 남편

강용석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함.
A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함.

  • 2015년 4월 28일 B 씨 소를 취하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B 씨가 아닌 제3자가 소취하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고, B 씨는 본인은 소를 취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기사1기사2 이후 6월 10일로 재판이 잡혔다가,기사[10] 사건이 서울가정법원으로 이송되었다.

  • 강용석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B 씨가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기사

  • A 씨는 자신에 블로그에 소를 제기한 B 씨 본인이 불륜중이며 자신과의 이혼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B 씨는 기존에도 상습적으로 합의금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부인과 얽힌 사람을 협박해왔던 경력이 있고, 재수없게 이번에 걸린 것이 강용석이라는 주장이다.

  • 그러나, 홍콩으로 여행간 적이 없다던 강용석의 초기 주장과는 다르게 홍콩 출입 기록이 확인되었고(홍콩 여행 날짜가 파워블로거 여행 날짜와 겹친다) 아직 이에 대해 해명을 하지 않아서 어느쪽이 진실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다.

  • 8월 3일 B 씨는 강용석을 상대로 법원에 썰전출연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관련기사

  • 8월 18일. 디스패치에서 강용석 불륜 의혹과 관련한 기사를 냈다.기사 같은 날 강용석은 디스패치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공식전문 그러나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기사가 나왔다.기사

  • 8월 19일 강용석은 B 씨를 공갈미수와 명예훼손으로 1억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같은 날 A 씨는 카카오톡 원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8월 20일 강용석은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공식전문

  • 8월 24일 B 씨는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 8월 21일 강용석은 B 씨와 변호사를 검찰에 형사 고소했다.

  • 9월 1일 악플러 200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 9월 6일 남편 B 씨의 아내 A 씨가 디스패치에서 공개한 사진 속 남성이 강용석임을, 전에는 거짓 해명을 했음을 인정했다. 기사 다만 아직 A 씨가 불륜 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 9월 23일 자신의 불륜 의혹을 보도한 매체를 고소했다.기사

  • 10월 15일 도도맘 A 씨가 잡지 여성중앙을 통해서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이름은 '김미나'. 강용석은 술친구 겸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며 불륜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관련기사

  • 11월경, 남편 B 씨가 김미나를 상대로 이혼 조정신청을 냈지만 성립되지 않았고,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 이혼소송에 강용석이 증인으로 신청되었으나,관련기사 채택은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2016년 7월 강용석과 김미나 사이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분석기사가 나왔다. 4월경부터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 2016년 8월 김미나가 문서 위조 혐위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의 초창기에 남편 B 씨의 소송이 제 3자에 의해서 소 취하서가 제출되었는데, 이것은 A씨(김미나)가 한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남편의 위임장을 위조하고, 이 위임장으로 주민센터에서 인감증명서까지 발급받은 게 밝혀졌다. 관련기사

  • 9월 6일, 김미나 씨가 남편과 벌이고 있는 소송을 취하하기 위해 남편의 인감도장을 훔쳐 서류를 위조하고 행사했다고 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을 강용석 변호사가 지시하고 종용했다고 밝혔다. 김미나 씨 측은 이를 입증할 증거 자료로 두 사람이 나눈 문자메시지를 제출하였고 강용석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률 사무소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증인 신문은 10월 27일에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 10월 28일, 강용석은 A씨의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으나, 강용석은 "증언 거부권이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고, A씨 측에서 증인신청을 철회하였다.#

  • A,B 씨의 이혼사건은 B씨의 강용석에 대한 손해배상 사건과 병합되어 서울가정법원 합의부에서 심리중이다. 병합된 후의 첫 변론기일은 9월 7일 비공개로 열렸으며, 다음 재판은 11월 9일에 열릴 예정이다.#

  • A씨의 형사사건이 11월 10일에 변론종결되어 12월 1일로 선고기일이 지정되었는데,# '죄질은 나쁘지만 실제 소송에는 영향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5. 선거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한나라당

39,603 (39.2%)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한나라당

36,447 (45.9%)

당선 (1위)

2010.7.20 제명, 출당
(아나운서 비하 논란)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무소속

5,623 (5.9%)

낙선 (3위)

6. 여담[편집]

  • 강용석은 소위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개천표 용'이라고 블로그에 소개한 바 있으며, '스타특강쇼' 등 강연이나 인터뷰 자리에서도 가난한 성장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였는데,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 달동네의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며, 아버지는 교도소를 자주 들락거려 그 합이 13년이 넘어간다고 한다.

  • 이전 버전에서 강용석이 잠실 신천중학교와 삼성동 경기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예로 들며 최소한 중학교 이후에는 부유하게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TV조선 <호박씨>에서 "교육을 위해 마포에서 강남의 지하방으로 이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신천중학교 부근[11]은 부촌은 아니었으며 서민~중산층 정도의 생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강용석은 고등학교 재학 당시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거주하였다. 따라서 강남의 "지하방" 출신 운운은 거짓이다.

  • 장학퀴즈 또한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고등학교 시절에 출연했다고 하며, 고시 합격 이후에도 아버지가 수감 중이라는 이유(참고로 전과 20범)로 우수한 사법연수원 성적에도 불구하고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이 어렸을 때도 있었는데, 연합고사 만점을 받고 고등학교에 들어와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계속 반장만 하다가 고2 때 집에 돈이 없다고 반장을 안 시켜줬다고 한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성적이 2등까지 떨어졌다고.

  •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서인지, 새누리당의 미남 정치인으로 유명한 홍정욱[12]보다 자기가 외모적으로 더 낫다는 식의 발언도 방송에서 했다. 일단 자기 키가 181cm라고 주장하며, 177~178cm 정도의 홍정욱보다 자기가 확실히 크며 자기 얼굴이 조지 클루니 닮은 것 같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윤종신이 그 자리에서 '클루니' 말고 루니(웨인 루니) 닮았다고 받아쳤다.

  •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임용되지 않은 것은 군 법무관 시절 고문 및 수사권을 내세운 상관(중령) 폭행 사건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다. (1995년 3월 18일 한겨레 신문: ‘폭행 장교’ 감싸기) 지금도 사법연수원생이 그정도 사고를 치면 판검사 임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13]

  •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거론하며 날렸던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 잘 만나는 것'이라는 취중 욕설 트윗과 함께 그의 과거 배경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기사 결국 아버지는 강용석이 29세 때 교도소 수감 중 의식을 잃어 형집행 정지가 되고 2달 후 사망했다고 한다.

  • 배우 유준상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여성중앙에서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인터뷰 코너에서, 간만에 만나 인터뷰도 하고 이런 화보까지 찍었다. 뭔가 어색 유준상은 학창시절 기억을 되짚어, 그에 대해 "친하진 않았지만 아주 진취적인 학생이었다..." 라고 평하기도.

  • 작곡가 겸 가수 주영훈, 클론의 멤버인 구준엽강원래, 전 일기예보러브홀릭 멤버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강현민과는 경기고등학교 84기 동창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이들은 서로 모르고 지냈다고... 주영훈은 강용석과 2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우열반을 나눴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는 모양인데, 경기고등학교는 당시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지 않았다. 다만 과목별로 성취도에 따라 우열반을 나누어 수업하는 과목이 있었다(수학, 영어). 또한 반에서 석차 순으로 상위 이십 명 정도를 야간 학습반에 투입하여 따로 관리하기도 했다.[14] 그러나 아무튼 학급 자체를 성적에 따라 나눈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경기고등학교는 전교생이 3000명, 한 학년이 1000명인 학교였다. 17~18반까지 있었으니 당연히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수백 명인 것이다. 게다가 당시 경기고등학교는 한 반에 60명~70명 정도였고, 같은 반이더라도 취향이나 성적 등에 따라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이였을 수 있다. 강원래-강용석 인터뷰

  • 2013년에 "강용석의 직설"이라는 대담집 형식의 책을 펴내어 자신이 보는 정치계와 방송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인터넷을 켜 자신의 이름을 쳐보시더라고요."와 같은 유자식 상팔자에서 나왔던 강용석의 자식들의 증언과 지금까지의 왕성한 블로그 포스팅, 자신이 언급되는 것에 대한 빠른 피드백으로 보아 늘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문서도 그의 눈에 들어와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참고로 유자식에서는 두 아들의 저격 어택에 신나게 맞고 사는 게 일상. 물론 본인도 반격 저격을 하지만 제 10회의 솔까말 토크 주제인 부모가 황혼 이혼을 한다면 뜻을 존중한다 vs 반대한다 에서는 두 아들과 출연진인 부모들과 손범수에게 영혼까지 탈탈탈 털렸다.(...) 그리고 술취해 트위터를 한다고 아들들이 한탄하기도. 참고로 정치인 시절에 아나운서 사건을 비롯한 갖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대형사고를 종종 치다보니 부인이 남편 직장의 같이 일하는 변호사에게 이혼 서류 보내달라해서 프린트 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협박을 하신단다. 유자식 상팔자 10회에서 본인이 인증했다. 그리고 아나운서 사건 때문에 둘째 아들이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했다고.

  • 경기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장학퀴즈 주장원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f0018015_5165e75defab8.png
    리즈시절 이 사진을 보면 안경과 헤어스타일을 빼면 둘째아들(강인준)과의 모습과 상당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나왔었다. 아빠와 아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임이 알려졌다. 처남이 김윤옥 전 영부인의 조카사위. 가계도를 그려보면 남남으로 보일 정도로 멀지만 그냥 넘어가자

  • tvN 드라마 잉여공주에 게스트로 나왔다. 대사도 있는데 연기는... 그냥 넘어가자

여러분들은 검사가 아니예요. 저는 피의자가 아니구요. 지금 토론을 하시는 거잖아요. 자꾸 사실관계를 물으시는 것은 토론이 아니죠. 여러분들은 토론을 하는 것이지 취조를 하는 게 아니예요.

  • 대학생들과 강용석은 대학토론배틀 시즌3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물론 결과는 대학생들의 일방적인 패배가 대부분. 강용석과 토론을 시작했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사실 문제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해서 결국 사실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강용석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양상은 진중권 vs 간결 토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흐름이다. 하지만 어떤 대학생들은 상당히 훌륭한 토론을 이끌기도 했기 때문에 강용석이 일어나서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 SNL 코리아에도 호스트로 출연. 물론 너 고소 사건으로 디스당하는 내용이 많았다. 디스를 집중적으로 당하는 중에는 떨떠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등장하는 이지예이지애아나운서패러디다. 실제로 이지애 前 아나운서는 2014년 9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용석 변호사와 화해하고 싶다는 움직임을 먼저 보여준 바가 있다. #

  • 92년 97년에 각각 김대중 前 대통령을 뽑았고 02년에는 이회창 후보를 뽑았다고 했다. 사실 부모님도 진보와 보수로 놓고보면 진보성향이라고 한다. 썰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꾸준한 김대중 지지자였고 이후에도 노무현, 그리고 아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자 꾸준히 보수 쪽으로 활동하는 중이였는데도 대선 때 문재인을 뽑았다고 한다. 아들이 국회의원 출마 때 빼고는 민주당 쪽 투표했다고. 설마 박원순 대 정몽준 때도 박원순?

  • 세 아들의 외할아버지, 즉 강용석의 장인이 외손자들에게 의 임야를 증여했는데, 강용석이 장남 원준이와 차남 인준이의 산은 처분했다고 한다. 선거에 출마하면 가족의 재산 현황도 나오게 되는데 어린 자식들의 명의로 산이 하나씩 등록돼 있으니(...) 오해와 비난이 상당해서 그랬다는 듯. 막내 세준이는 강용석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있던 시기에 받았기 때문에 삼형제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 용산에 공천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것도 곧 팔릴 듯 하다

  • tvN의 신규방송 수요미식회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방송 시간이 강용석이 출연중인 TV조선강적들과 겹쳐서 겹치기 논란이 일것으로 예상하고 제작발표회전에 수요미식회 작가들과 함께 예상답변까지 준비했으나 제작발표회에 온 기자들은 강용석의 겹치기 출연에 대한 질문은 하지않았다. 아는데 관심이 없는 건지,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건지… 그리고 패널들과 전문가들이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놀랄 정도로 별에 별걸 다 아는 편이다. 그 후 수요미식회가 2015년 4월 29일자로 9시 40분으로 이동되었으나 이번에는 본인이 MC로 하는 유자식 상팔자랑 겹치게 되어 결국 유자식 상팔자를 하차하게 되었다.

  • jTBC속사정쌀롱에 출연했을 때 밝힌 바로는 의외로 숙적일 것 같은 진중권과도 사적인 만남이 종종 있었던 걸로 보인다. 농담도 하면서 '형님'이라는 호칭을 쓸 정도라면..[15]

강용석 : 형님, 제가 요즘 술자리 만들면 많이 불렀는데, 외로우신가봐.. 형님 제가 전화하면 꽤 많이 나오셨잖아요.
진중권 : (불평)아니 왜 꼭 12시, 1시쯤에 바로 잠든 직후에 깨워서 불러대?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많이 나간 건 아니고, 절반 정도만 나갔지.
강용석 : 하하 그러니까.. 형님은 여자 있다고 할 때만 나오시더라고..
진중권 : .. 이 새퀴가? 당했다

  • 완전 무명이나 다름없던 2005년 10월 14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맥아더 장군 동상의 철거를 주장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와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당연히 강정구를 디스하는 패널로 등장해서 그의 아들들의 카투사 복무이력과 미국 로펌에서 근무하는 것 등을 들춰내 생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주기에 이른다. 이에 빡친 강정구의 아내가 토론 도중에 KBS로 전화를 걸어 강용석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쿨하게 거절해버리는 패기가 아주 일품이다. 이후 강정구에게 고소미를 먹었는지의 여부를 아는 위키러는 추가바람. #30대의 이 풋풋한 얼굴을 보라

  • 2015년 9월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7번 출구 인근에 너 고소 짤을[16] 활용한 광고를 내었다. 그러나 서울지방변호사회[17]에 의해 변호사의 품위를 훼손한다는 제기에 광고부적격 판정을 받고 철거되었다. 목격한 시민들도 불쾌하다는 반응이 상당수. 당연하게도 고소는 결코 장난스럽거나 컨셉 따위의 목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될 행위이다. 강용석 본인의 전적도 그렇지만 변호사라 법에 대해 해박한 것을 믿고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도덕적인 실책을 많이 범했는데 그의 팬들이 아닌 이상 좋게 보일 리가... 평소 개념 챙기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컨셉질을 하다가 제재를 먹은 사례.

  • 불륜논란 이후로 방송에서 다 하차 했지만, 오히려 그 이후로 더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수입 역시 방송활동 때보다 훨씬 높다고 이윤석이 강적들에서 밝혔다.

  • 20대 총선 과정에서 지역구를 옮겨서 용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를 노리고 선거운동을 시작했으나, 결국 2016년 2월 새누리당이 복당을 불허하면서 20대 총선을 통한 정치적 재기 시도는 끝났고, 정치적 재기를 시도했으니 방송재기도 하염없어졌다. 자신의 새누리당 복당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 악플 단 사람들을 고소해서 경찰 조사를 받게 했다. 용산은 기존 국회의원인 진영 의원이 재선에 성공.

  • 박정희 前 대통령이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며 쓴 혈서[18][19]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가[20] 민족문제연구소측에게 고소를 당했다. 재판의 쟁점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혈서를 조작했다’는 강씨 등의 주장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했는가?' 였는데, 1심과 2심 모두 강용석 측이 패소하였다.관련 기사

[1] 강원래, 구준엽, 주영훈, 강현민과 동기 동창이다. 특히 주영훈은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2] 2012년 4월 13일 이후 트위터 갱신이 안되고 있다. 2014년 11월부터 아예 비공개로 전환됐다.[3] 해당 페이스북 첫 게시물에 "딱 봐도 사칭이구만 ㅋㅋㅋ 진짜면 고소해도 됨 ^^"이라는 댓글이 달리자 강용석이 "진짜임"이라는 댓글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2016.01.27 강용석 맞음"이라 적힌 종이를 든 채 환하게 웃는 사진을 올렸다.[4] 참고로 경기고-서울대 라인을 KS라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 중 하나이다. 과거 평준화 이전 전성기 때에는, (경기중-경기고-서울대가 엘리트 코스였다.) 학생이 5백 명이라고 가정하면, 2/3가 서울대를 입학하고, 나머지 1/3이 고려대나 연세대를 합격할 정도로 끗발 날리던 학교였다. 다만, 강용석이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평준화 시절인데, 그렇다고해도 소위 말하는 '강남8학군' 중 하나였다. 삼성동,청담동에 위치한 경기고등학교는 평준화 이후에도, 유력가의 자제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각종 특목고가 세워진 현재에도 매년 서울대 입학 학생수에는 순위(30위 안에)권에 항상 든다. KS라인에 속하는 강용석 본인도 뺑뺑이 출신일지라도 경기고 학연의 덕을 상당히 많이 본다고 밝힌 바 있다.[5] 미국 로스쿨 LL.M.은 1년 과정이며 입학 시 법학 학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법학석사라고 지칭한다. 국내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판사/검사들이 안식년 개념으로 미국 로스쿨 LLM 과정에 입학한다. 로펌 변호사들은 소속 로펌이 학비를 지원해 준다. 실상 미국에서 LL.M. 학위는 외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미국법을 소개하는 비교법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에서 흔히 미국 법무박사라 칭하는 3년 과정의 Juris Doctor(J.D.)과정이 일반적 로스쿨 과정이다. 실제로 미국인 중 J.D. 취득 후에 이러한 일반 LL.M.을 취득하는 법조인은 없으며, 특정 법 분야에 대해 좀 더 세분화해서 공부하는 학위로서 전문 LL.M. 과정이 세법(Tax Law) 등 분야에 개설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이름 없는 로스쿨을 나와 학벌 보충이 필요한 일부 J.D. 출신들이 이러한 과정을 수강하기도 하나, 이러한 전문 LL.M. 과정은 비교법 과정인 일반 LL.M.과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J.D. 없이 일반 LL.M. 학위만 소지한 경우 몇 군데 주요 주를 제외하고는 주별 변호사 시험(state bar exam) 응시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미국 로스쿨에 LLM 연수가는 국내 변호사, 검사, 판사들 중 상당 수가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은 따고 오는 편인데 강용석은 따고 오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6] 강용석 변호사의 전문 분야가 저작권 관련 소송이다.[7] 수요미식회의 시간대가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차를 하였다.[8] 과천외국어고등학교에 출연.[9] 이마저도 원래는 2014년 말에 커뮤니티 사이트 위주로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상당히 퍼져나갔다가, 당사자인 D모 블로거가 고소미를 시전하자 쏙 들어갔었다.[10] 소취하서가 제출되었으나 변론기일이 잡혔다는 것은, 재판부가 소취하를 무효로 판단하였음을 의미한다.[11] 소형 평수의 주공1~3단지, 중형의 주공5단지, 새마을 시장 근처 단독주택으로 구성. 부유층 아파트인 아시아선수촌은 당시 없었다. 지금은 주공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해 일대가 부촌으로 변모했다.[12] 60대 대표 미남배우였던 남궁원의 아들이다.[13] 당시 아버지의 투옥 부분 등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14] 타 학교와 달리 강제성은 없었다.(과외를 하는 학생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15] 그러나 진짜 친하다기보다 몇 번 본 걸 이용한 디스의 느낌이었다.[16] 원래의 사진은 2011년 11월 8일 국회에서 조경태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 촬영된 것이다. 강용석 vs 조경태, "너 집에 가" 고성 설전 당시 상황 영상(2016년 1월 방송)[17] 강용석이 소속된 변호사회[18] 박정희 前 대통령 아니, 다카키 마사오가 쓴 혈서의 내용이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정신과 기백’,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겠다.’ 이다... 심지어 해당 혈서는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만주에서 발행된 일본어 신문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에 실렸다. 신문은 혈서의 내용을 사진과 함께 미담으로 소개했다...이뭐병 [19]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前 대통령이 일제강점기당시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할 당시에 썼던 이름이다.[20] 강용석 뿐만 아니라 정미홍 前 KBS 아나운서, 일베회원도 같이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