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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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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성훈(姜成燻)[1]

출생

1980년 2월 22일 (38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체

171cm, 53kg, B형

가족

어머니 정예금[2], 여동생 강윤지인스타그램[3]

종교

개신교

학력

경일경영정보고등학교 경영정보과 (졸업)[4]

데뷔

1997년 젝스키스 1집 '학원별곡'

소속사

DSP미디어 (1997~2000)
레볼루션 No.9 (2001~2003)
라플 엔터테인먼트[5](2004~2005)
YG엔터테인먼트 (2016~)

소속그룹

젝스키스

포지션

센터[6], 메인보컬

별명

살인미소[7], 방글이, 후니, 요뎡, 냉동인간, 우아한 도른자, 젝스키스의 꽃, 핑.대[8], 훈종대왕[9], 실물깡패, 피카츄[10]

SNS

인스타그램

공식사이트

서비스 기간 만료

공식 카페

공식카페


1. 개요2. 젝스키스 활동3. 솔로 활동4. 사건사고
4.1. 병역특례 비리 사건4.2. 사기사건 (총 7건 중 1건 유죄)
5. 재기6. 수상 경력7.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 그룹 젝스키스의 메인보컬.

2. 젝스키스 활동[편집]

파일:external/kinimage.naver.net/1498379357414.gif


젝스키스의 꽃

젝스키스의 메인 보컬로써 아이돌계에서도 알아주는 유니크한 미성의 소유자. 젝스키스의 주요 활동곡들이 강하고 빠른 댄스곡임에도 불구하고 후렴부분을 미성으로 애절하게 잘 살려 조화를 맞추며 특유의 목소리나 창법으로 젝스키스의 발라드나 미디움템포 곡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11]

지금도 미성이지만 톤이 낮아진 상태로, 목 보호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지금보다 훨씬 상큼한간드러지는 목소리였다. 톤이 낮은건 본인말로 어른용 목소리라고. 특히 1, 2집은 1절을 혼자 부르는 수준의 노래도 많이 있었다. 2집 활동 이후 뮤지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창법을 잡고 가창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영상 참조. 일단 메인보컬 포지션이 인기 얻기는 유리한 데다가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본인도 외모로는 어디 빠지지 않았다. 젝스키스 내에서도 은지원과 함께 인기도 수위를 다투었으며, 그런 은지원과 동성팬픽 등에서 커플링으로도 많이 묶였다.[12]고지용과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던 친구이면서 둘 다 왕자님 외모 이미지가 있었기에 죵훈으로도 자주 묶였다. 또한 원조 살인미소로도 유명하다.[13]

데뷔 당시엔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지만, 젝키 멤버들을 뽑는데 큰 역할을 한 중심 인물이기도 하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이 직접 당시 캐스팅 상황을 밝혔는데, 원래 소속사 대성기획 측에서는 은지원과 강성훈을 2인 듀엣으로 데뷔시킬 예정이었으나, 데뷔를 준비하던 도중 라이벌 그룹 H.O.T.가 5인조로 데뷔해서 대박을 터뜨리자, 본래 계획인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된다. 이에 강성훈이 자신은 더이상 안하겠다고 말했는데, 소속사 사장인 이호연이 "대신 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며 설득했다.[14] 그래서 강성훈이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 옆에 앉아 이야기하며 멤버들을 선발했다고 한다. 이때 상황에 대한 강성훈의 컴백 자서전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원문: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한창 5명에서 6명 정도의 댄스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멤버의 수가 6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사장님,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멤버가 그렇게 많은 그룹에서는 노래부르기 싫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배짱이 튀어나왔는지 겁도 없이 사장님께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수의 꿈을 접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사장님은 나를 설득하시는 한편, 어머니를 만나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번 품은 가수의 꿈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때 나의 마음을 돌려주신 분은 어머니셨다. "성훈아, 비록 어리지만 사장님과 이미 한 약속은 지켜야 되지 않겠니? 그리고 쉽게 네 꿈을 접을 수 있겠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어머니, 한번 해볼게요. 그 대신, 열심히 할 게요." 그리고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은 지금의 멤버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였다. 착하고 세련된 느낌의 수원이, 워낙 춤을 잘 추는 재덕이 형과 재진이 형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한 지용이. 지용이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와 붙어다니던 춤꾼 중에 춤꾼이었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이자,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고 잘해낼 자신감이 생겼다.


멤버별로 밝힌 일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장수원은 오디션 장에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말하는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 강성훈이 사장한테 귓속말로 "쟤 픽스 하시죠"라고 말했다고 하고, 김재덕은 워낙 춤을 잘 추니 사장이 애초에 OK했다고 한다.[15]

이재진의 경우, 강성훈 생각에 김재덕이 각기춤을 잘 추는 반면 이재진은 웨이브를 잘 춰서 조화가 맞아 보였다고 한다. 다만 이호연이 6명 멤버 중 유일하게 퇴짜를 놓았었던 인물이 이재진이기도 한데,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 했다고. 이 점을 보면 이재진의 영입은 강성훈의 역할이 큰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존 인터뷰 등에서 밝혔던 바에 따르면, 이재진의 영입은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한 덕분이다. 99년도 출연한 서세원쇼에서나,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이 그러하다.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 원문: "재덕이는 내일부터 연습하자!" 아쉽게도 나만 뽑히게 되었다. 주노형 사무실에서 약 3일을 머는 동안 DSP 이호연 사장님이 우리들의 춤을 보시더니 당시 구상중이던 젝키의 멤버로 나를 점찍게 된 것이다. 난 한번도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퀵실버 멤버들 중 누구는 뽑히고 누구는 떨어지고.... 정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꽤 고민이 되었다. 원하던 가수가 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냥 부산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니... 일단 팀에 합류했다. 주위에서는 "네가 잘 되어야지 친구들도 도와줄수 있다"란 말씀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린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누가 되더라도 웃음으로 보내주자라고... 다행히 재진이가 함께 남았다. 재진이는 주노형 사무실에 있으면서 백댄서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젝키멤버로 사람이 부족했다. 연습하던 한 친구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능력보다 춤추는 능력이 있으면 좋은 자리였다. 난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매니저인 기영이형에게 부탁해서 재진이를 다시 한번 봐달라고 졸랐다.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예요." 함께 있던 지원이형도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그 동안 주노형 사무실엣서 봤던 이미지가 꽤 좋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기영이형도 마음을 돌렸다. 그리곤 사장님께 허락을 받아 재진이를 젝키의 5번째 멤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참고로 이호연 사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낸 유일한 멤버가 이재진[16]인 것을 보면, 이때부터 악연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고지용은 강성훈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인데, 강성훈의 추천으로 젝키에 합류하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호연이 처음 얼굴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멤버로 영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날 강성훈의 고지용에 대한 발언은 부정확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지용이 강성훈한테 가수를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라는 것은 상당부분 전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편집상의 문제라고 보인다.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즉, 강성훈의 말에서 '고지용이 가수를 하고 싶어했다' 라는 것은 먼저 가수를 하고 싶다고 자기 의견을 낸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강성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뒤 설득 끝에 승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젝키 활동 시절 리더 은지원, 이재진은 어디로 튈지 몰라 회사에서 인터뷰를 금지시켰고 김재덕은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이유로 금지시켰기 때문에, 출연하는 방송마다 대부분 강성훈이 인터뷰를 도맡아 했었다. 게다가 그룹 내에서도 메인 보컬이라는 특성상 파트도 가장 많았기 때문에, 강성훈이 리더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꽤 많았다.

반박자 빠른 댄스로 유명했다. 흥이 많고 의욕이 앞서 립싱크를 할 때면 멤버들이 "성훈아 빨라!!"라고 자제시켰다고 한다. 반박자 빠른 강성훈

1999년에 젝스키스와 핑클이 북한에 공연을 간 적이 있는데[17], 이때 북한 사람들이 강성훈을 여자로 착각해서 젝스키스를 '혼성중창'이라 표기했다.(...) 곱상한 외모와 미성 때문인 듯하다. 외모와 목소리뿐 아니라 방송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은근히 애교가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성격은 상남자라고 한다. 정확히는 매우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조절할줄 아는 타입. 팬들 조련에도 매우 능숙하다. 무대 매너도 뛰어난 편.

젝스키스 멤버들이 다들 그렇지만 그 중에서는 물론 연예계 내에서도 손꼽히는 동안이다. 2017년 기준으로 데뷔한 지 20년을 넘긴데다가 나이도 37세[18]임에도 불구하고, 외모가 데뷔 초창기에 비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근 10년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염색머리와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 당시의 오글거리는 말투를 아직도 고수중[19]이라, 냉동인간 취급을 받고있다.

3. 솔로 활동[편집]

젝스키스 해체 후에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고 나름대로 평타는 했지만, 아이돌 그룹 리드싱어 출신들이 그렇듯 그룹 활동 시기만큼의 인기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하였다. 솔로 1,2집은 10만장을 넘었지만 3,4집은 5만장에도 못미치는 판매량이 나왔다. 하지만 3집은 대한민국 음반시장 불황의 절정인 2003년에 발매되었고 "아껴둔 이야기"가 음방, mp3 시장 쪽에서 선전하며 사랑받았다. 3집부터 다시 창법을 바꿔서 조금 더 다운된 톤으로 노래를 하게 되었다. 기존의 창법으로는 주 장르인 발라드를 소화해내는 데 한계가 있었던 데다 1세대 아이돌의 쇠퇴와 발라드, R&B 가수들의 부흥기가 겹치게 된 것이 한 몫했던 듯.

해체 이후 젝스키스 멤버들간 피쳐링이 의외로 활발했는데 1집에는 은지원을 제외한 다섯 멤버들(고지용까지)이 모여 부른 "지난 1년 동안은"이 수록되었다. 김재덕, 장수원이 제이워크로 컴백했을 때에도 같이 무대에 서고 응원하러 와주는 등 변치 않은 친분을 보여주었었다.

1, 2집에서 앨범 뒤에 감사한 분들에게 적는 쪽지를 보면 원래부터 유재석, 이휘재 등등의 내노라 하는 진행자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토토가2 첫 방송분[20]에서 유재석과 인사를 격하게 한 것도 그 이유.

드림콘서트에서도 강성훈(은지원 연합) 팬이 만명이 오는 등 죽지 않은 화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2004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조금씩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15년 개인콘서트에서 직접 말하기를 배가 불러서 솔로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했다.

4. 사건사고[편집]

4.1. 병역특례 비리 사건[편집]

강성훈은 2005년 8월부터 한 게임개발업체에서 대체 복무를 했지만, 2007년 병역특례 비리수사에서 부실 복무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병무청으로부터 재입대처분을 받고 재검을 거쳐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무릎 치료를 이유로 재입대를 연기하였다. . 2013년 11월 14일자 기사에 의하면 당시까지도 재입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현재까지도 재입대하였다는 기사는 찾을 수 없다. 참고로 같은 사유로 재입대 처분을 받았던 이재진은 2008년에 재입대하여 2010년에 복무를 완료하였다.

일각에서는 강성훈이 아래에서 보다시피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병역의무가 면제된 것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범죄경력 때문에 병역의무가 면제되려면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 혹은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아야 한다. 그런데 강성훈은 비록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긴했지만, 실형은 면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21](1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고 재판직후 바로 법정구속까지 됐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고 풀려났다). 따라서 강성훈의 범죄경력은 강성훈이 병역의무를 면제받을 사유가 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강성훈이 왜 아직 재입대를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리고 재검 이후에 그동안 어떻게 미뤘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18년 와서는 이미 만 38세의 고령으로 면제가 되는 나이여서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한다.

4.2. 사기사건 (총 7건 중 1건 유죄)[편집]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총 6건의 사기 사건에 휘말렸다. 그 중 5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11년에 고소된 1건은 법원에서 유죄판결(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그러다 2018년에 또 다시 1건의 고소가 추가되었다. 그리하여 총 7건.

참고로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단지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해서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갚을 의사나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 사실을 속이고 돈을 빌린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한다. # 강성훈이 유죄판결 받은 사건(2011년에 고소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강성훈)은 돈을 빌릴 당시 변제 능력이 없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속이고 돈을 빌렸)다"며 유죄판결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각 사건들을 고소된 연도별로 나누어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2011년에 고소된 사건: 총 1건 (유죄판결)
2011년 사기 혐의로 고소되었고, 2012년 3월 30일 구속되었다. 같은 해 9월 5일에는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져 석방되었다. 즉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2013년 2월 13일 1심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되어 법정구속되었다. 강성훈은 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에서 강성훈은 무죄 주장을 철회하고 양형부당(형량)만 주장하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2013년 9월 5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재판결과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액수가 너무 커서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도 "피고인이 초범인데다 반성하고 있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음에 따라 강성훈은 출소하였고 재판은 종결되었다. 한편 이 사건의 유죄판결로 인해 강성훈은 MBC 출연금지 명단에 등록되어 있었으나, 2016년 4월 무한도전 제작진의 요청으로 출연금지에서 해제되었다.

2013년에 고소된 사건: 총 4건 (무혐의 처분)
2013년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가로 4건의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이 4건에 대해서는 2014년 하반기에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5년에 고소된 사건: 총 1건 (무혐의 처분)
2015년 4월 또 다시 사기혐의로 고소당했다. 이 건에 대해서 수사기관은 2015년 8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8년에 고소된 사건: 총 1건
2018년 3월 또 다시 사기혐의로 고소당했다.# #

5. 재기[편집]

출소 이후, 10년 만에 새앨범을 발표한다고 했으나 MBC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 올라갔다. MBC는 KBS와는 달리 출연금지 연예인이 소속됐던 그룹 가수들의 노래까지 금지곡으로 지정되지 않기 때문에 모자이크를 하는 선에서만 그쳐서 억울하게 다른 멤버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2014년 들어서는 소규모 및 자선 공연 등에 참석하여 공연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등 선행을 하며 팬들에게 모습을 비추며 재기를 위한 노력을 서서히 해오던 중, 2015년 1월 26일 고속도로에서 5중 추돌 교통사고에 휘말렸다. 관련기사 앞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핸들을 꺾었고 관련기사, 뒤에 오던 버스가 연달아 추돌하면서 5중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강성훈에게도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책임은 분명히 있으나, 정황상 사고를 피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절대적인 가해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부 기사에서는 안 그래도 이미지가 좋지 않은 강성훈을 무조건적으로 가해자로 몰고 갔다. 연예계 복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사건이 터져 많은 이의 비난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샀지만, 생일파티 개최 등 향후 일정은 별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였다.

2015년 5월 19일 EBS 리얼극장에 모친과 함께 출연하였다.

2016년 4월 7일 무한도전 제작진의 요청으로 MBC 출연금지가 풀렸으며, 9일 뒤인 4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에 출연했다. 이후 공중파 3사의 TV,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6년 7월 3일에는 MBC 복면가왕아름다운 밤이에요 오스카로 참가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로맨틱 흑기사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 상대가 1라운드에서 꺾은 상대는 젝키의 팬이었다고 한다.

실놀이 할때의 목소리가 너무 귀엽다 탱크~ 권총~

6. 수상 경력[편집]

  • 2002 SBS 가요대전 인기상

7. 여담[편집]

  • 사기죄로 법원을 드나들 당시에 강성훈의 코트는 화제였다. 부내나는 코트

  • 여자 연예인 킬러로 유명했다. KBS 2TV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아이돌 특집'에서 은지원이 인증. 사실 그 살인미소라면 남자라도 홀리겠다만...[22]

  • 젝스키스 초창기 시절, 당시 우리나라 최고 미녀연예인 김희선과 연상연하 커플이었다.[23]

  • 예능에서의 화법이 매우 1차원적이다. 오랜 기간 송사에 묶여 현재의 예능의 흐름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인지 언행을 자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라디오 스타에서 '대박남', '대박녀'와 같은 단순한 합성어를 사용하거나 요새는 '종결자'나 '끝판왕'이라는 말도 안 쓰는 데... 대마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MC들을 무안하게 하기도... 덕분에 팬들이 훈종대왕[24]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1] 영문이름은 Ricky 리키 마틴 아저씨 보고 있나[2] 그의 중학생 시절 이혼했다.[3] 일본에서 2004년부터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9월 드라마 ost로 한국 활동을 시작하였다.[4] 하와이 유학 중에 귀국하여 젝스키스 활동을 하면서 한국켄트외국인학교에 다녔으나 법적으로 국내소재 외국인학교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솔로활동을 하게 되면서 음악공부를 위한 대학 진학을 염두해 두고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이후에 대학 진학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5] 현재의 NH미디어로 과거 임창정, UN이 속해있던 기획사.[6] 무대와 화보 등에서 센터에 많이 서는 편. https://m.youtube.com/watch?v=Q9PdAwo8zk8 남자아이돌 최강 센터 8위를 하기도 하였다.[7] 아래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살인미소라는 단어의 원조이다.[8] 핑크 대가리의 준말.[9] 그가 요즘 유행어를 잘 몰라서 대박남, 대박녀 등등 유행어인줄 알고 쓴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유행어, 신조어로 통했으며 이를 보답하듯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종대왕처럼 단어를 새로 창조하는 걸 빗대어 붙인 별명이다.[10] 피카츄 따라하는 과거 영상도 있다! 졸귀… [11] 대표적으로 커플이나 예감을 타가수들이 원곡의 맛을 살리기가 꽤나 어렵다.[12] 데뷔 과정부터 이미 커플링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은지원과 하와이 유학 중, 하와이에 놀러 온 대성기획 사장에게 은지원이 클럽 DJ를 하던 곳의 클럽 사장이 은지원과 강성훈을 추천했고, 그 곳에서 즉석 오디션을 본 두 사람에게 가수를 제의했고 그렇게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기 때문.[13] 살인미소가 김재원을 통해 대중화가 되었을 때 강성훈 팬들과 원조논쟁이 있기도 했다.[14] 이날 이 사실을 안 김재덕은 멘붕이 왔다.[15] 근데 이어진 장수원의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은 김재덕 얼굴을 보고 뽑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에 강성훈이 해명하길, 얼굴이 아니라 사투리가 너무 쎄서 오해했다고 밝혔다.[16] 싸이월드 방명록에 호연이란 이름을 가진 팬이 글을 남겼는데, 이재진이 "호.연.이라.."라며 불편하다는 티를 냈었다. 팬이 어리둥절했을 듯.[17] 김대중 정부 때이며 이 시기에는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남북한의 문화교류가 활발했다.[18] SBS 판타스틱 듀오 출연 당시 바이브윤민수와 같은 1980년생 동갑임이 밝혀졌는데, 윤민수는 자신이 빠른 생일이라 하였지만 강성훈이 본인도 빠른 생일임을 밝히자 데꿀멍하여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게다가 생일만 놓고 봐도 강성훈이 윤민수보다 5일 먼저 태어났다.[19] 다만 솔로 활동 당시나 공백기에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예감 활동때는 안경을 착용한 적도 있다. 아마 젝스키스 재결합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당시와 같은 모양으로 다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20] 해당 방송분은 스노우진 특집이 늘어지는 바람에 에피소드 중간에 토토가2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해당 방영분 처음 부분에는 젝스키스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3부의 공연 분량 편집 실패의 원인이 된다.[21] 비록 재판받는 중에는 구치소에 구속되어있었지만, 그건 실형이 아니다. 도주우려나 증거인멸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치소에 구속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데, 강성훈 역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던 것뿐이다. 참고로 재판결과 최종적으로 실형이 확정되면, 구치소가 아니라 교도소에 살게 된다.[22]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로 강성훈에게 매력을 느껴 만나자, 연락하자며 들이대는 남자 동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솔로 4집 시절 본인이 라디오에서 직접 언급했다.[23] 물론 이 사실은 당시 소문으로만 존재하다가 최근 몇년 사이 다시 강성훈이 방송활동을 하면서 쿨하게 연기자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고백으로 확인되었다.[24] 2007년 즈음 패션쇼에서 파란 용포, 익선관을 착용하고 런웨이 한 적 있다. 당시 27세의 나이임에도 외모도 냉동인간 동안에, 체구가 제법 아담해서 꼬마 신랑이라는 별명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