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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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성훈(姜成燻)[1]

출생

1980년 2월 22일 (38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체

171cm, 53kg, B형

가족

어머니 정예금[2], 여동생 강윤지인스타그램[3]

종교

불교[4]개신교[5]

학력

경일경영정보고등학교 경영정보과 (졸업)[6]

데뷔

1997년 젝스키스 1집 '학원별곡'

소속사

DSP미디어 (1997~2000)
레볼루션 No.9 (2001~2003)
라플 엔터테인먼트[7] (2004~2005)
YG엔터테인먼트(2016~)

소속그룹

젝스키스

포지션

센터[8], 메인보컬

별명

살인미소[9], 방글이, 후니, 요뎡, 냉동인간, 우아한 도른자,
핑.대[10], 훈종대왕[11], 실물깡패, 피카츄[12], 이상한 아저씨[13], 추성훈 강하다[14], 꾸니[15]

SNS

인스타그램

공식 카페

공식카페


1. 개요2. 젝스키스 활동3. 젝스키스 멤버 영입에서 강성훈의 역할?4. 솔로 활동5. 재기6.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다.7. 사건사고/논란8. 수상 경력9. 여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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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기그룹 젝스키스의 메인 보컬로서 인기를 누리던 중 2010년 사기 혐의로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다가, 2016년 토토가와 젝스키스 재결합을 통해 극적의 기회를 얻은 인물로 평가되었으나...
팬들에게 보여준 기만적인 행태와 전 매니저 협박등의 개인 사건사고로 현재는 팬들이 퇴출을 요구할만큼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버린 연예인.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이다.

2. 젝스키스 활동[편집]

젝스키스의 메인 보컬로써 아이돌계에서도 알아주는 유니크한 미성의 소유자. 젝스키스의 주요 활동곡들이 강하고 빠른 댄스곡임에도 불구하고 후렴부분을 미성으로 애절하게 잘 살려 조화를 맞추며 특유의 목소리나 창법으로 젝스키스의 발라드나 미디움템포 곡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16]

지금도 미성이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톤이 낮아진 상태로, 목 보호노화방지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지금보다 훨씬 상큼한간드러지는 목소리였다. 톤이 낮은건 본인말로 어른용 목소리라고. 특히 1, 2집은 1절을 혼자 부르는 수준의 노래도 많이 있었다. 2집 활동 이후 뮤지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창법을 잡고 가창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영상 참조 일단 메인보컬 포지션이 인기 얻기는 유리한 데다가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본인도 외모로는 어디 빠지지 않았다. 젝스키스 내에서도 은지원과 함께 인기도 수위를 다투었으며, 그런 은지원과 동성팬픽 등에서 커플링으로도 많이 묶였다.[17]고지용과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던 친구이면서 둘 다 왕자님 외모 이미지가 있었기에 "용 훈"으로도 자주 묶였다. 또한 원조 살인미소로도 유명하다.[18]

젝키 활동 시절 리더 은지원, 이재진은 어디로 튈지 몰라 회사에서 인터뷰를 금지시켰고 김재덕은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이유로 금지시켰기 때문에, 출연하는 방송마다 대부분 강성훈이 인터뷰를 도맡아 했었다. 게다가 그룹 내에서도 메인 보컬이라는 특성상 파트도 가장 많았기 때문에, 강성훈이 리더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꽤 많았다.

반박자 빠른 댄스로 유명했다. 흥이 많고 의욕이 앞서 립싱크를 할 때면 멤버들이 "성훈아 빨라!!"라고 자제시켰다고 한다. 반박자 빠른 강성훈

1999년에 젝스키스와 핑클이 북한에 공연을 간 적이 있는데[19], 이때 북한 사람들이 강성훈을 여자로 착각(...)해서 젝스키스를 '혼성중창'(...)이라 표기했다.영상 참조 곱상한 외모와 미성 때문인 듯하다. 외모와 목소리뿐 아니라 방송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은근히 애교가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성격은 전 메니저를 협박하던 이 동영상처럼 상남자(...)라고. 정확히는 매우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조절할 줄(?) 아는 타입. 팬들 조련에도 매우 능숙하다. 무대 매너도 뛰어난 편.

젝스키스 멤버들이 다들 그렇지만 그 중에서는 물론 연예계 내에서도 손꼽히는 동안이다. 게다가 근 10년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염색머리와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 당시의 오글거리는 말투를 아직도 고수중[20]이라서 종종 냉동인간 취급을 받기도 한다.[21]

3. 젝스키스 멤버 영입에서 강성훈의 역할?[편집]


2016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강성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의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는데, 강성훈은 반발하여 자신은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이에 사장이 "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성훈이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 옆에 앉아 이야기하며 멤버들을 뽑았다. 장수원은 오디션 장에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말하는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 강성훈이 사장한테 귓속말로 "쟤 픽스 하시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재덕은 워낙 춤을 잘 추니 사장이 처음부터 OK 했다. 근데 장수원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은 김재덕 얼굴을 보고 뽑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에 강성훈이 해명하길, 얼굴이 아니라 사투리가 너무 쎄서 오해했다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강성훈 생각에 김재덕이 각기춤을 잘 추는 반면 이재진은 웨이브를 잘 춰서 조화가 맞아 보였다고 한다. 고지용은 강성훈과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인데, 고지용이 강성훈에게 가수를 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강성훈의 추천으로 젝키에 합류하게 됐다.


이호연 사장을 싫어하는 젝키 팬덤은 이 방송을 계기로 "젝스키스를 만든 것은 강성훈이지 이호연은 한 것이 없다"는 식의 글을 많이 퍼뜨렸다. 그러나 강성훈 발언 자체부터 다른 멤버들 발언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을 뿐더러, 사실관계를 따지면 젝키를 만드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이호연 사장이다.

우선 이재진의 영입은 기존 인터뷰에서 밝혀졌던 바에 따르면,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한 덕분이다. 원래는 이호연이 6명 멤버 중 이재진은 뽑기 싫어했다.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99년도 출연한 서세원쇼나(영상 14분부터),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에 은지원과 김재덕이 회사를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22]

고지용의 경우 기존에 자서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호연이 처음 얼굴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멤버로 영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지용이 강성훈한테 가수를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라는 부분도 고지용 본인의 말과 다르다.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장수원의 경우 이호연 사장이나 다른 멤버의 발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뽑혔다. 2차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이 '잘 하는 게 뭐냐'고 장수원에게 물었는데, 장수원은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

영입 과정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호연 인맥의 공이 제일 컸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은지원, 강성훈 2명은 이호연이 친분이 있던 하와이 클럽 사장으로 부터 소개 받아 직접 데리고 왔다.(출처: 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 그리고 나머지 3명도 강성훈이 아니었으면 젝키 멤버로 뽑히지 않았을거라고 볼 수 없다. 장수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사장이 솔직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서 뽑고 싶어 했다. 김재덕과 이재진은 이주노 소속사의 연습생이었는데, 이호연이 찾아가 직접 데려왔다. 이호연과 이주노가 형 동생 하는 사이일 정도로 친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고지용의 경우 강성훈을 계기로 소개받았으니 강성훈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컴백 자서전의 강성훈 부분에 적힌 관련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문: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한창 5명에서 6명 정도의 댄스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멤버의 수가 6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사장님,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멤버가 그렇게 많은 그룹에서는 노래부르기 싫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배짱이 튀어나왔는지 겁도 없이 사장님께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수의 꿈을 접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사장님은 나를 설득하시는 한편, 어머니를 만나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번 품은 가수의 꿈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때 나의 마음을 돌려주신 분은 어머니셨다. "성훈아, 비록 어리지만 사장님과 이미 한 약속은 지켜야 되지 않겠니? 그리고 쉽게 네 꿈을 접을 수 있겠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어머니, 한번 해볼게요. 그 대신, 열심히 할 게요." 그리고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은 지금의 멤버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였다. 착하고 세련된 느낌의 수원이, 워낙 춤을 잘 추는 재덕이 형과 재진이 형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한 지용이. 지용이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와 붙어다니던 춤꾼 중에 춤꾼이었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이자,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고 잘해낼 자신감이 생겼다.


즉, 강성훈이 젝키의 결성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은 과장됐다. 젝키 팬들이 퍼뜨리던 "젝키는 강성훈이 만든 그룹이고 이호연은 한 것 없다"는 말은 더더욱 거짓이다. 애초에 강성훈이 원하는대로 였다면 젝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성훈이 싫어하던 김재덕이 초반부터 잘만 멤버로 가입된 것을 보면, 이호연 사장의 발언(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이 진심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나 안하겠다는 16살 짜리 연습생을 달래느라 한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대형기획사가 사운을 걸고 런칭하는 아이돌을 16살 짜리 연습생이 전적으로 맡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23]

2018년 9월 강성훈의 팬클럽 문제, 대만 공연 문제 등 여러 구설수가 터지고 나서는, 위 발언이 거짓이었다는 글이 젝키 팬덤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도에 강성훈이 젝키 만들었다며 글 퍼뜨리던 것을 생각하면 180도 태도가 변했다.

4. 솔로 활동[편집]

젝스키스 해체 후에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고 나름대로 평타는 했지만, 아이돌그룹 해체후 솔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그렇듯 그룹 시기만큼의 인기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하였다. 6명의 매력을 혼자감당하긴 어려운 법이니. 솔로 1, 2집은 10만장을 넘었지만 3, 4집은 5만장에도 못미치는 판매량이 나왔다. 하지만 3집은 대한민국 음반시장 불황의 절정인 2003년에 발매되었고 "아껴둔 이야기"가 음방, mp3 시장 쪽에서 선전하며 사랑받았다. 3집부터 다시 창법을 바꿔서 조금 더 다운된 톤으로 노래를 하게 되었다. 기존의 창법으로는 주 장르인 발라드를 소화해내는 데 한계가 있었던 데다 1세대 아이돌의 쇠퇴와 발라드, R&B 가수들의 부흥기가 겹치게 된 것이 한 몫했던 듯.

해체 이후 젝스키스 멤버들간 피쳐링이 의외로 활발했는데 1집에는 은지원을 제외한 다섯 멤버들(고지용까지)이 모여 부른 "지난 1년 동안은"이 수록되었다. 김재덕, 장수원이 제이워크로 컴백했을 때에도 같이 무대에 서고 응원하러 와주는 등 변치 않은 친분을 보여주었었다.

1, 2집에서 앨범 뒤에 감사한 분들에게 적는 쪽지를 보면 그룹활동에 의해서 유재석, 이휘재 등등의 내노라 하는 진행자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4] 토토가2 첫 방송분[25]에서 유재석과 인사를 격하게 한 것도 아이돌 그룹으로 잘 나가던 시절 이후에 오랜만에 반가웠던 것이 그 이유로 추정된다.

드림콘서트에서도 강성훈(은지원 연합) 팬이 만명이 오는 등 죽지 않은 화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2004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조금씩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15년 개인콘서트에서 직접 말하기를 배가 불러서 솔로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했다.

2005년 8월부터 한 게임개발업체에서 대체 복무를 했지만, 2007년 병역특례 비리수사에서 부실 복무 사실이 드러났고, 병무청에서 재입대 처분후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을 받았다. 밑에 항목 참조.

2011년 사기죄로 복역 이후 2013년에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를 함으로써 2심에서 감형되어 집행유예로 출소하였다. 밑에 항목 참조.

5. 재기[편집]

2013년 출소후, 2014년에 10년 만에 새앨범을 발표한다고 했으나 MBC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 올라갔다. MBC는 KBS와는 달리 출연금지 연예인이 소속됐던 아이돌그룹의 노래까지 금지곡으로 지정하지 않기 때문에 출연금지 당사자인 본인만 모자이크하는 선에서 그쳐서 다른 젝스키스 멤버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해년도에 소규모 및 자선 공연 등에 참석하여 공연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등 선행을 하며 팬들에게 모습을 비추며 재기를 위한 노력을 서서히 해오던 중, 2015년 1월 26일 고속도로에서 5중 추돌 교통사고에 휘말렸다. 관련기사 앞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핸들을 꺾었고 관련기사, 뒤에 오던 버스가 연달아 추돌하면서 5중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강성훈 본인이 앞차와의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뒤에서 추돌한 차량이 가장 큰 책임소재가 있기 때문에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상황. 그러나 일부 기사에서는 안 그래도 사기, 병역비리 등으로 이미지가 안 좋은 강성훈을 일방적으로 가해자로만 몰고 갔고, 연예계 복귀를 계속 시도하는 와중에 사건이 터져 가뜩이나 말이 많던 상황에서 더 많은 이의 비난을 받게되었다. 그로 강성훈의 연예계 복귀를 희망하던 골수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지만, 생일파티 개최 등 향후 일정은 별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였다.

2015년 5월 19일 EBS 리얼극장 - 내 아들은 무죄입니다(...)편에 모친과 함께 출연하였다.

2016년 4월 7일 무한도전 제작진의 요청으로 MBC 출연금지가 풀렸으며, 9일 뒤인 4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에 출연했다. 이후 무한도전 방송의 영향으로 무난히 인기를 회복하면서, 공중파 3사의 TV,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7월 3일에는 MBC 복면가왕아름다운 밤이에요 오스카로 참가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로맨틱 흑기사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 상대가 1라운드에서 꺾은 상대는 젝키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나가던 그였으나...

6.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다.[편집]

2018년 9월, 팬들을 상대로 사기와 횡령의혹 그리고 대만 콘서트 이면계약서로 인해 무한도전을 이용한 재기가 스스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9월 말 들어서는 10월 예정된 콘서트도 개인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었다고 발표함에 따라, 팬덤에서조차 강성훈 퇴출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물론 퇴출을 반대하는 팬들도 있지만, 여론은 또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중. 퇴출 찬성쪽이 모든 팬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퇴출 반대쪽도 모든 팬을 대표하는것은 아니다. 퇴출 반대쪽은 SNS를 통해 퇴출 반대 글을 올리기도 했다.해당 포스트

7. 사건사고/논란[편집]

내용이 길어져서 따로 분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강성훈/사건사고 및 논란문서 참조.

8. 수상 경력[편집]

  • 2002 SBS 가요대전 인기상

9. 여담[편집]

  • 사기죄로 법원을 드나들 당시에 강성훈의 코트는 화제였다. 부내나는 코트

  • 여자 연예인 킬러로 유명했다. KBS 2TV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아이돌 특집'에서 은지원이 인증. 사실 그 살인미소라면 남자라도 홀리겠다만...[26]

  • 젝스키스 초창기 시절, 당시 우리나라 최고 미녀연예인 김희선과 연상연하 커플이었다.[27] 그 다음 주자가 모두 알듯이 에릭...

  • 예능에서의 화법이 매우 1차원적이다. 오랜 기간 송사에 묶여 현재의 예능의 흐름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인지 언행을 자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라디오 스타에서 '대박남', '대박녀'와 같은 단순한 합성어를 사용하거나 요새는 '종결자'나 '끝판왕'이라는 말도 안 쓰는 데... 대마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MC들을 무안하게 하기도... 덕분에 팬들이 훈종대왕[28]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1] 영문이름은 Ricky 리키 마틴 아저씨 보고 있나[2] 그의 중학생 시절 이혼했다.[3] 일본에서 2004년부터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9월 드라마 ost로 한국 활동을 시작하였다.[4] 예감 뮤비를 잘 보면 팔목에 염주가 있다.[5] 젝스키스 활동 초창기 시절엔 불교였으나, 수년 전 개종하였다. #[6] 하와이 유학 중에 귀국하여 젝스키스 활동을 하면서 한국켄트외국인학교에 다녔으나 법적으로 국내소재 외국인학교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솔로활동을 하게 되면서 음악공부를 위한 대학 진학을 염두해 두고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이후에 대학 진학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7] 현재의 NH미디어로 과거 임창정, UN이 속해있던 기획사.[8] 무대와 화보 등에서 센터에 많이 서는 편. https://m.youtube.com/watch?v=Q9PdAwo8zk8 남자아이돌 최강 센터 8위를 하기도 하였다.[9] 아래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살인미소라는 단어의 원조이다.[10] 핑크 대가리의 준말.[11] 그가 요즘 유행어를 잘 몰라서 대박남, 대박녀 등등 유행어인줄 알고 쓴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유행어, 신조어로 통했으며 이를 보답하듯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종대왕처럼 단어를 새로 창조하는 걸 빗대어 붙인 별명이다.[12] 피카츄 따라하는 과거 영상도 있다![13] 청담동 영상의 후반부 아이가 한 이 모든 사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렸던 한마디[14] 대중들에게 흥하는 밈으로 '추'와 '강'을 어떻게 바꿔도 말이 되는 게 웃음포인트[15] 사기꾼이란 조롱의 의미. 유래는 팬들이 애칭으로 사용하던 '후니'[16] 대표적으로 커플이나 예감을 타가수들이 원곡의 맛을 살리기가 꽤나 어렵다.[17] 데뷔 과정부터 이미 커플링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은지원과 하와이 유학 중, 하와이에 놀러 온 대성기획 사장에게 고딩 은지원이 불법노동한 클럽 DJ를 하던 곳의 클럽 사장이 고딩 은지원과 고딩 강성훈을 추천했고, 그 곳에서 즉석 오디션을 본 두 사람에게 가수를 제의했고 그렇게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기 때문.[18] 살인미소가 김재원을 통해 대중화가 되었을 때 강성훈 팬들과 원조논쟁이 있기도 했다.[19]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남북문화교류 차원으로써 북한에 가게 된 것이다.[20] 다만 솔로 활동 당시나 공백기에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예감 활동때는 안경을 착용한 적도 있다. 아마 젝스키스 재결합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당시와 같은 모양으로 다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21] 최근에는 컨셉상 뇌도 냉동이라는 취급을 받기도한다.[22]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 원문 : "재덕이는 내일부터 연습하자!" 아쉽게도 나만 뽑히게 되었다. 주노형 사무실에서 약 3일을 머는 동안 DSP 이호연 사장님이 우리들의 춤을 보시더니 당시 구상중이던 젝키의 멤버로 나를 점찍게 된 것이다. 난 한번도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퀵실버 멤버들 중 누구는 뽑히고 누구는 떨어지고.... 정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꽤 고민이 되었다. 원하던 가수가 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냥 부산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니... 일단 팀에 합류했다. 주위에서는 "네가 잘 되어야지 친구들도 도와줄수 있다"란 말씀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린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누가 되더라도 웃음으로 보내주자라고... 다행히 재진이가 함께 남았다. 재진이는 주노형 사무실에 있으면서 백댄서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젝키 멤버로 사람이 부족했다. 연습하던 한 친구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능력보다 춤추는 능력이 있으면 좋은 자리였다. 난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매니저인 기영이형에게 부탁해서 재진이를 다시 한번 봐달라고 졸랐다.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예요." 함께 있던 지원이형도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그 동안 주노형 사무실에서 봤던 이미지가 꽤 좋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기영이형도 마음을 돌렸다. 그리곤 사장님께 허락을 받아 재진이를 젝키의 5번째 멤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23] 당시의 DSP(대성기획)는 SM과 함께 2대 기획사였다[24] 그 시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니, 유재석, 이휘재와 여럿 예능에 출연했었다.[25] 해당 방송분은 스노우진 특집이 늘어지는 바람에 에피소드 중간에 토토가2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해당 방영분 처음 부분에는 젝스키스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3부의 공연 분량 편집 실패의 원인이 된다.[26]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로 강성훈에게 매력을 느껴 만나자, 연락하자며 들이대는 남자 동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솔로 4집 시절 본인이 라디오에서 직접 언급했다.[27] 물론 이 사실은 당시 소문으로만 존재하다가 최근 몇년 사이 다시 강성훈이 방송활동을 하면서 쿨하게 연기자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고백으로 확인해주었다.[28] 2007년 즈음 패션쇼에서 파란 용포, 익선관을 착용하고 런웨이 한 적 있다. 당시 27세의 나이임에도 외모도 냉동인간 동안에, 체구가 제법 아담해서 꼬마 신랑이라는 별명 얻기도 했다.